깜빡.


깜빡.


깜빡.


깜빡.


"...그, 제발 그만 좀 깜빡거리고 다른 곳이라도 좀 보면..."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요청했다. '그것'은 그대로 나를 계속 쳐다봤고, 결국 난 한숨을 쉬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쪽으로 좀." 그것의 머리를 잡으며 강제로 반대쪽을 쳐다보게 했다. 천천히 머리를 돌리는 동안, 갑자기 손이 미끄러져서-


목을 완전히 꺾어버렸다. 하지만 요동도 하지 않고, 대가리는 다시 원위치로 복귀해버렸다. 정말 미쳐버릴 거 같은 느낌. 나는 계속 머리를 긁적거리고, 그냥 한숨을 다시 한번 더 깊게 쉰 채, 다시 작업 의자로 돌아갔다. 그것은 사실 사람은 (당연히) 아닌, 부엉이도 아닌, 내가 시킨 보컬로이드다. 사실 그 문장 끝에 "-이였어야 했다"를 붙이는 게 더 정확할 거 같다.


"휴먼,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왜 너를 받았는지의 생각이요..."


-------------


일은 아마 며칠 전 부터 시작한다. 나는 현재 성인이고, 라이브하우스에서 알바하는 평범한 대학생. 어떨 때 심심하면 작곡도 하는 사람이지만, 그렇게 특출난 실력도 아니라 딱히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진 않는다. 대학교 입학 전 까진 호화로운 인싸 생활을 기대했지만, 알고 보니 인싸 생활은 무척 귀찮아서 그냥 아는 사람 몇 명 제외하곤 혼자서 통학, 강의 듣기, 식사를 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때 들은 뉴스가 있었다. 당시 Cevio에서 새로운 AI를 발매한다고 했다. 그리고 대망의 출시 날을 기다리며, 성능 영상까지 보고 나는 결국 지갑을 찢어버렸다. "이건 그냥 원본 목소리 아니야?" 할 정도로 소름 끼칠 정도로. 패키지 판을 일본 현지에서 시키고, 그토록 기다렸던 택배를 받았는데,


"...그, 본인 택배 맞으시죠?" 택배기사님이 본인의 키보다 더 큰 택배를 가져오며 여쭤보았다. 나는 약 170이나 되는 높은 택배를 보며 눈을 비볐다. 내가 이런 걸 시킨 적이 있었나? 이건 대체 뭐지? 설마 나한테 장기 매매 시체를 증거인멸로 보내서 나를 누명을 씌우고 나는 결국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의 법정에 서며 징역 40년을 살고 내가 사랑하는 음악과 대학 생활을 낭떠러지에 버리고 결국-


"저기요?" 택배기사님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씀하셨다. 


"ㄴ, 네!"


"그, 제가 좀 바빠서, 일단 빨리 사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ㅇ, 예..." 나는 차분히 사인함에 선 하나를 그으며 끝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택배기사님은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지나 비상계단으로 내려갔다. 나는 이 높은 소포를 보며 머리를 잡으며 고민하였다.


"대체 뭘까…."라고 난 허공에 묻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체 일단 현관문을 먼저 열고, 소포를 집안으로 끌어왔다. 그리고 택배 스티커에 붙혀진걸 읽었다.


CeVIO AI POPY ver.0


"엥?" 읽으니 더욱더 머리가 아파진다. 원래 cd 박스급 크기로 와야 하는 게, 왜 이런 큼지막한...


"아 몰라, 일단 안으로~" 난 이제 정신이 나간 상태로 박스를 내 거실 겸 침실 겸 주방인 곳에 들고 왔다. 그러고 주방에서 칼 하나를 들고 와 열리던 참에...


"위험물자 감지. 즉시 조치 진행."


*퍽!*


갑자기 주먹 쥔 손 하나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 나는 놀란 나머지 엉덩방아 바닥에 쓰러지고, 칼을 떨어트리며 손가락을 살짝 벴다. 하지만 비인 나머지, 너무 놀라서 고통조차 못 느꼈다. 주먹을 천천히 펼쳐지고, 박스 바깥쪽 표면을 만지작만지작하였다.


그리고 이건 약 5분 동안 계속됐다. 신기해서 나도 그냥 앞에 의자 하나를 들고 와 구경했다.


그리고 결국 박스 안에 생물체가 대답하였다.


"지원 요청. 지원 요청."


"맨손으로 국제소포 박스를 부순 애가 지원 요청..." 나는 어이없듯이 다시 칼을 집어 들었다.


"위험 물자 감지-"


"아니 잠깐-"


*퍽!*


---------------


"....으어." 익숙한 천장이다. 나는 침대 위에 누워있었고, 결국 맞은 듯하다. 이제는 밤이 되어 그런지 방은 어둡고, 불빛은 한곳에서만 오고 있었다. 바로 내 컴퓨터.


그리고 그 앞에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나는 무서운 나머지, 조심스레 소리 안 날 정도로 일어서며, 컴퓨터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있는 존재를 맞이하였다.


"...뽀삐?" 어이없게도, 나는 내 입으로 그렇게 말했다. 왜냐면 진짜 그 뽀삐가 내 집, 내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내 히요비 북마크를 마구 탐색하고 있었다. 난 그 이후로 그냥 생각을 포기하고, 내 눈앞에 있는 걸 현실로 맞이한 상태로 일단 상황을 풀어나갔다.


물론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열었다.


"해당 PC 사용자의 취향은 매우 사회에서 동떨어진 상태입니다." 뽀삐가 나한테 보고하듯이 말하였다. 나는 순간 빡이 돌았다. "...그래? 왜?" 뽀삐는 머리를 다시 화면으로 돌려, 클릭을 연속으로 계속 이어 나갔다. "사용자의 사진들을 해당 사이트에서 사용중인 특정 키워드로 하나씩 종합해본 결과, stuck in wall 56건, nakadashi 23건, crossdressing-"


"ㄱ, 그만!" 나는 황급히 멈추었다. "그, 알겠으니까…. 그런 종합 같은 건 안 해도 돼, 제발..." 나는 손을 흔들며 거부 현상을 확실히 표했다. 뽀삐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ㅁ,ㅁ, 마스터?" 안 그래도 머리가 아팠는데, 더 아파진다... "그 마스터 말고 그냥 이름으로만 말해주면 안 될까?" 뽀삐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제 프로토콜을 무조건 인간 상대를 존중하여 대답을 응해야 합니다." 뽀삐는 차갑게 말했다. "박스 열려고 식칼 들었는데 그 사람을 쭉빵 때리는 게 존중이냐...!" 나는 속삭이며 말했다. 뽀삐는 갸우뚱하며 나를 보았다. "입력 오류. 저는 마스터의 아무 요청을 따라야 하는 입장. 피해를 끼칠리가 없음."


"그런 거 치곤 사람을 기절시켰는데요??"


"다음 업데이트 때 개선하겠음." 그리고 기계음이 흘러나오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몇 초 후, 다시 고개를 올렸다. "피드백 완료. 한번 저 커터칼을 들어봐 주시길 바람." 뽀삐는 내 책상 위에 있는 커터칼을 삿대질하며 가르쳤다. 나는 한숨을 쉬며 커터칼을 쥐었다.


"....."


"뽀삐?"


"하아...하아..."


"?"


"마스터, 그 커터칼로 저를 범할... 그래도 마스터의 취향은 제가 결코 존중할 수밖에..."


"아니거든?!?!?" 나는 커터칼을 뽀삐의 얼굴에 스트레이트로 꽂으며 거부감을 온몸으로 표현하였다. "피드백 접수." 뽀삐는 차가운 얼굴로, 커터칼이 자기 이마에 꽃힌체 머리를 또다시 고개를 숙이고, 기계음이 흐르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에게 대체 왜 이런 시련이…." 나는 얼굴을 두손으로 가리며 고민에 빠졌다. 뽀비는 커터칼이 계속 본인 이마에 꽃힌체, 내 손가락을 보았다.


"응급처치 진행." 이라며, 본인의 입에 내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아니, 일단 커터칼 부터 뽑고 하든지 말든지 해!" 이마에 꽃혀있는 커터칼이 내 손가락에서 약 몇 센치 위에 왔다갔다 하는걸 보고 흠칫한체 뽀삐의 얼굴을 밀쳤다.


"옛설." 뽀삐는 거수경레를 하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하..." 나는 바닥에 주저 앉으며, 두손으로 내 얼굴을 파뭍힌 뒤, 깊은 고민에 바졌다.


그리고 뽀삐와 내 긴 인연을 그렇게 시작되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