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이... 휴식이 필요하다... 나, 미셸의... 아, 내 이름 착각했다. 오쿠사와 미사키는 휴식이 필요하다!

 

 9월 1일. 헬로! 해피 월드는 유치원 아이들과 인솔자 교사를 데리고 소프트볼 체험을 하러 갔다. 하구미가 신나서 선두에 서고, 코코로도 아이들에게 미소를 전해줄 생각으로 기운이 넘쳐 흐르고, 카오루 씨는 여전히 뭔 말인지 모를 이야기를 늘어놓고, 카논 씨는 제멋대로 구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후에에엥~’거리고 있었다.

 

 9월 2일. 병원에서 환자인 아이들에게 위문 라이브를 했다. 이미 여러 번 워문 라이브를 한 곳이라 성원이 대단했다. 라이브가 끝나자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고생했지. 아이들에게 받은 사탕과 과자는 몸에도 마음에도 달콤했지만. 특히 미츠시마 미라이(満島未来)란 여자애가 준 수제 과자는 그 아이의 마음이 담겨있어 더 달콤했다.

 

 9월 3일. CiRCLE 아오바 씨 생일 축하를 했다. 그것 외엔 이벤트랄 게 없었다.

 

 9월 4일. 코코로의 돌발 기획으로 나는 시골에 내려가 농사 체험을 했다. 쌀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유익한 시간이었지만 난 쉬고 싶었다. 아무래도 좋지만 그곳엔 파스파레 분들도 계셨다. 궁극의 오므라이스를 만든다나?

 

 9월 5일. 풍선 위에 앉아서 공중 라이브를 하겠다는 코코로의 발언으로, 헬로 해피 멤버들은 커다란 풍선 위에 올라갔다. 카오루 씨가 기절하여 풍선 바깥으로 떨어졌으나, 자동 낙하산이 펼쳐지며 무사히 검은 양복 사람들이 설치한 쿠션 위에 착지했다. 미셸인 채로 서 있던 나도 균형 잡기가 매우 어려웠지만 다행히 떨어지진 않았다.

 

 9월 6일. 하구미의 소프트볼 시합에 응원하러 갔다. 미셸 치어리더 복장으로 치어리딩을 해야 했다.

 

 9월 7일. 카오루 씨의 연극을 보러 갔다. 조금이라도 눈을 떼면 흥분해서 떠들려고 하는 아이 둘을 돌보느라 연극 내용이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9월 8일. 또 코코로에게 끌려가서 이번에는 스카이다이빙을 했다. 공중 라이브를 위한 준비라나? 스카이다이빙을 하면서 연주가 실제로 가능할지는 둘째치고 카오루 씨의 정신이 버티지 못해 파기됐다.

 

 9월 9일. 상점가에서 길거리 퍼레이드 라이브를 했다. 수많은 풍선이 휘날리는 멋진 라이브였으나, 풍선을 치우느라 고생을 심하게 했다.

 

 9월 10, 11일. 집에서 눈을 뜨자마자 코코로에게 끌려가서 헬로 해피 멤버로 인적이 없는 섬에 도착했다. 무인도에서 서바이벌 체험을 하며 내 꿀 같은 주말을 반납했다.

 

 9월 12일. 니코리나 공주가 일본에 오셔서 웃는 얼굴의 순찰대는 관광 안내를 해드렸다. 이국에서 온 친구이니까 힘든 표정을 지으면 안 돼... 스마일... 스마일...

 

 9월 13일. 헬로 해피 멤버들과 함께 종이배로 스미다강을 건너는 체험을 했다. 왜? 도대체 왜? 그 와중에 카논 씨의 배만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9월 14일. 웃는 얼굴의 순찰대는 동네 쓰레기를 수거하여 길을 아름답게 만드는 이벤트를 했다. 취지는 좋아... 좋긴 해...

 

 9월 15일. CiRCLE에서 후타바 씨의 생일을 축하했다. 공원에서 헬로 해피 라이브를 했고, Morfonica가 게스트로 와줬다.

 

 9월 16일. 하구미의 제안으로 헬로 해피 멤버 모두 함께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행동인 걸까?

 

 9월 17, 18일. 바보 트리오가 미셸이 사는 곳에 찾아가겠다고 하면서 나와 카논 씨를 전국 여기저기 끌고 다녔다. 내가 미셸인 걸 이해하지 못하는 그 셋이 미셸의 집을 찾아낼 리가 없으므로 이틀 내내 전국 여행을 하느라 지쳤다.

 

 9월 19일. 유치원에서 헬로 해피 월드의 라이브를 했다. 사탕이 비처럼 쏟아지며 아이들이 함박웃음 짓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나도 아이들처럼 그저 웃기만 하고 싶다.

 

 9월 20일. 강아지를 잃어버린 아이를 위해 웃는 얼굴의 순찰대는 날이 지도록 강아지를 찾아다녔다.

 

 9월 21일. 헬로 해피 월드는 봉사 활동 일환으로 상하차 아르바이트에 도전했다. 왜?!

 

 9월 22일. 9월 2일에 방문했던 병원과 다른 병원에서 위문 라이브를 했다. 수제 쿠키를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나눠주며 웃는 얼굴을 함께 나누었다. 아이들의 미소를 보며 피로를 이겨내야지...

 

 9월 23일. 코코로의 발안에 따라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면서 라이브 연습을 했다. 이젠 헬로 해피가 밴드인지 서커스인지 나로서는 구분할 수가 없다.

 

 9월 24, 25일. 이번에는 등산에 끌려갔다. 그냥 등산도 아니고 에베레스트 등반에 말이다. 조난 당해 죽을 뻔했다. 나는 따뜻한 미셸 안에 있어서 그나마 추위를 덜 탔지만 다른 사람들은... 정말 혹한 지옥 한가운데에 있는 기분이었겠지.

 

 9월 26일. 헬로 해피 멤버들에게 테니스를 가르쳐줬다. 아니, 라켓은 던지는 게 아니라고!

 

 9월 27일. 공부를 못하는 토야마 씨와 하구미를 위해 이치가야 씨와 함께 공부를 도와줬다. 원래는 내가 아니라 리미일 예정이었으나, 코코로가 진짜 좀비를 찾으러 가자며 리미를 끌고 가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내가 대신 가게 됐다.

 

 9월 28일. 이번에는 노인정에서 라이브를 했다. 직접 만든 죽을 나눠주며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놀았다. 이젠 심신에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지쳤다.

 

 9월 29일. 코코로가 간장 범벅의 종이를 보물 지도라고 보여주며 뜬금없이 헬로 해피의 보물찾기 여행이 시작됐다. 보물이... 있을 리가 없잖아!

 

 9월 30일... 오전 내내 비틀거리던 나는 오후에 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사유는 과로였다.

 이번 달 내내 나는 쉬지 않고 격하게 움직였다. 위에서 설명한 것 외에도 상점가 미셸로서도 일했다. 헬로! 해피 월드의 DJ로서의 일, 헬로! 해피 월드의 편곡자 및 기타 등등 담당 오쿠사와 미사키로서의 일, 상점가 미셸로서의 일... 이제 상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났다.

 내일은 10월 1일, 내 생일인데도 멀쩡한 몸으로 맞이할 수 없다니! 이대로 병실에서 생일을 맞이해야 하는 걸까. 식사도 밍밍해서 맛없는 이곳에서?

 나는 지금 심정을 억울하게 토로하면서도 드디어 편안하게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침대에 쓰러지듯 누우며 눈을 감았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나니 그곳은 낯선 곳이었다. 병실 환경 자체도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고 하나, 이곳은 병실보다도 더 낯선 곳이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건 똑같았지만 침대의 외형이 달랐다. 벽 한 면이 통째로 투명했으며 건너편엔 알록달록하게 빛나는 정체불명의 세계가 있었다. 정면에는 문이 있었는데 손잡이가 없었다.

 복장은 자기 전과 똑같이 환자복... 또 츠루마키 가문의 소행인가? 내 생일이라고 이런 서프라이즈를? 이건 너무 선을 넘었잖아! 하루 정도는 날 좀 내버려둬!

 “여긴... 어디야...”

 나는 조심스럽게 혼잣말을 했다. 누군가가 대답해주길 바라며.

 그러자 정면의 문이 자동으로 옆으로 열렸다.

 “누구... 아니, 나? 아니, ‘나’는 아닌 거 같은데...”

 나는 문 너머의 상대의 모습에 놀랐다. 나와 같은 모습을 한 여성이었다. 정확히는 고등학생에 불과한 나보다 어른이 된... 좀 더 성숙해진 나처럼 보였다. 그 여성은 영화에서나 볼 법한 바디슈트를 차려입고 있었다.

 음... 츠루마키 가문 사람들이 이번엔 나와 닮은 사람을 구해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기획한 건가? 진심으로 그만뒀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만약 츠루마키 가문의 서프라이즈 이벤트라면 당장 중지해줬으면 합니다. 병실의 환자를 이렇게 취급하는 건 좀 아니잖아요?”

 “음... 츠루마키 가문의 힘인 건 맞긴 한데, 서프라이즈 이벤트는 아니야.”

 바디슈트의 여성은 떨떠름한 미소를 보이고 내게 다가왔다.

 “일단 내 소개를 할게. 내 이름은 오쿠사와 미사키.”

 “와, 내 이름도 오쿠사와 미사키인데, 우연이네.”

 “우연이 아니야. 필연이지. 그도 그럴 게, 나는 네 미래의 자신이니까.”

 “네?”

 그녀의 난데없는 SF 발언에 나는 당황스러운 반응을 감출 수 없었다.

 “여긴 타임머신이야. 믿지 못하겠다면 대충 광선총 쏘는 모습이라도 보여줘?”

 “광선총?”

 “그래, SF 영화의 단골 상품. ...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거.”

 바디슈트의 여성은 총 같이 생긴 걸 꺼냈다. 총구 대신 구슬 같은 게 박혀 있고 원형 유리로 둘러싸인, 딱 봐도 장난감처럼 생긴 총이었다.

 “뭐랄까, 진짜 같지 않고 장난감 같...”

 내가 진짜 같지 않다는 솔직한 평가를 늘어놓으려고 하자 바디슈트의 여성은 광선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나에게 조준해서.

 방아쇠를 당기자 광선총의 총구 역할을 하는 구슬에서 빛이 나와 일직선으로 내 가슴에 뻗어 나왔다.

 “으아아아악! 아... 아? 뭐야, 이거 간지럽잖아.”

 나는 가슴이 뚫릴 것을 각오했으나 그런 잔인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단지 간지러울 뿐이었다. 그마저도 발버둥이 일어날 정도로 크게 간지러운 건 아니었다.

 “당연히 네(오쿠사와 미사키)가 살상 무기를 가지고 다닐 것 같아? 네 말대로 장난감이야. 장난감. 아이들에게 웃는 얼굴을 주기 위한 장난감.”

 웃는 얼굴이라니 코코로가 할 법한 말을 하네.

 그 뒤로 나는 바디슈트의 여성을 따라 타임머신이라고 하는 이곳을 둘러보았다. 정체불명의 기계, 해괴한 창밖의 세상, 본격적인 느낌의 조종실 모두 일반인이 봤다면 바디슈트의 여성의 말을 믿었을 것이다. 문제는 츠루마키 가문의 정신 나간 기술력을 가까이서 봐온 나는 ‘츠루마키 가문이라면 어쩌면?’ 같은 생각이 먼저 들 수밖에 없었다.

 “믿지 않는 표정을 하고 있네. 뭐, 츠루마키 가문이라면 과거의 힘이라도 이 정도 세트장은 만들어낼지도 모를 테니 그럴 만도 한가? 그럼, 내가 너와 같은 인생을 보낸 사람인 것만 증명하면 미래의 나 자신인 걸 믿어주려나?”

 “그 말은... 나밖에 모를 이야기를 하겠다는 거지?”

 그 뒤로 바디슈트의 여성은 정말 나밖에 모를 이야기를 하나둘 늘어놓았다. 그건 아무리 츠루마키 가문이라 할지라도 알아낼 수 없는 정보였다.

 “이제 믿어주겠니?”

 “네... 그럼 미래의 저 자신이 절 타임머신에 태운 거야?”

 “별 건 아냐. 단지 거래가 하고 싶을 뿐이지.”

 “거래?”

 미래의 나는 살짝 헛기침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아시다시피 오늘 10월 1일은 우리 생일이야. 나는 코코로에게 생일 선물로 대충 학창 시절을 하루만 다시 보내고 싶다고 했는데, 타임머신을 선물해줬어.”

 “잠시만. 네? 뭐라고? 고작 친구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타임머신을 만들어서 선물했다고?”

 여전히 너무 엉뚱한 방향으로 엄청난 짓을 벌이잖아!

 “나는 이제부터 하루 동안 너 대신 10월 1일을 보낼 거야. 물론 네 허락이 떨어진다면 말이지. 대신 너는 나의 신분으로 미래의 생활을 즐겨봐. 널 위해 특별한 바캉스를 준비해뒀으니 엄청 즐거울 거야. 물론 겉모습은 상관없어. 이 바디슈트는 착용자의 연령을 조작할 수 있거든.”

 “미래의 츠루마키 가문은 대체 어떤 곳일까. 외계인과 교류라도 하고 있어?”

 “그건 직접 미래에 가서 확인해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즐거움이잖아?”

 “미래의 난 완전히 코코로에게 물들었다는 건 알겠어.”

 하아... 뭔가 엄청난 일에 휘말린 거 같은데... 그치만 상관없나? 미래에서 바캉스라니 다시는 없을 기회인걸.

 “...어차피 미래의 나라면 내 대답은 이미 알고 계신 거 아닌가?”

 “그렇지. 나에게 있어선 이미 거친 과거니까.”

 저쪽은 미래의 나다. 내가 거칠 길을 이미 거쳐온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할지 잘 알 것이다.

 “코코로와 하구미, 카오루 씨는?”

 “없어. 그 셋이 있으면 마음 편히 즐길 수 없잖아?”

 “그럼, 하루의 내 시간을 빌려줄게. 나도 당신의 하루를 받아가고.”

 “좋았어. 거래 성립이네.”

 어차피 이렇게 될 거 알고 있었으면서 저렇게 기뻐하네.

 나는 환자복을 벗고 미래의 내가 준 바디슈트로 갈아입었다. 미래의 나는 연령 조작으로 17세 시절의 몸으로 돌아간 뒤 내가 벗은 환자복을 입었다. 바디슈트엔 슈트 투명화 기능이 있어서 바디슈트를 입은 채 그 위에 옷을 입어도 바디슈트가 보이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옷을 갈아입은 동안 타임머신은 미래로 이동했다. 나는 미래에서 타임머신에서 내리고, 미래의 나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내 시간에서 하루 동안 살게 된다. 그러고 하루가 지나면 미래의 내가 날 데려온다는 흐름이었다.

 나는 바디슈트의 기능을 써서 미래의 나만큼 연령을 올렸다. 몸이 살짝 뜨거워지더니 시야가 높아지는 걸 실시간으로 느꼈다. 나는 탈의실에 놓인 전신거울을 보았다. 몸에 딱 달라붙는 바디슈트 덕에 몸매의 변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24세... 24세의 난 이렇게나 성숙한 여인이구나. 좋은 걸 알았어.

 “바캉스의 숙소에서 내려줄 테니까 잠옷으로 갈아입고 있어. 바디슈트는 알려줬던 대로 투명하게 만들고.”

 “네네, 잠옷이... 어... 미셸 룸웨어?”

 미래의 내가 마련해준 잠옷은 미셸을 본뜬 룸웨어였다. 아르바이트에서도 밴드 활동에서도 힘들게 미셸인 채로 돌아다니는데 집(숙소)에서도 미셸이어야 해?

 “미래의 누가 선물해준 거야? 아니면 수제?”

 “선물받은 거야. 7년 뒤에 선물을 받게 될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미래의 나는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바디슈트 위에 미셸 룸웨어를 걸치고 바디슈트를 투명하게 했다. 옷 위에 옷을 걸친 거지만, 바디슈트는 온몸에 딱 달라붙는 것 치고 입은 느낌이 전혀 안 나서 답답한 느낌은 전혀 안 났다. 대단하다, 미래의 기술.

 얼마 지나지 않아 타임머신은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는 내리게 됐다. 그곳은 호텔 느낌이 나는 방이었다. 창밖에는 내리쬐는 태양과 태양 아래서 찬란하게 빛나는 수영장이 있었다. 수영장의 임팩트에 순간적으로 가려졌지만, 창밖 곳곳에는 아름다운 분홍색 벚꽃이 휘날리고 있는 것도 보였다.

 “근데 바캉스라고 했는데 여긴 어디야? 일단 일본은 아닌 거 같은데.”

 분명히 이곳은 내 생일인 10월 1일일 것이다. 10월 1일의 일본은 이렇게 햇볕이 강하지도 벚꽃이 만발하여 휘날리지도 않는다. 내 시점에서 이곳은 가을인데, 봄과 여름의 풍경이 혼재된 혼돈의 장소였다.

 “츠루마키 가문이 만들고 관리 중인 인공 휴양지 섬 이름하여 ‘미셸도(島)’야.”

 “...응. 그렇구나. 미래니까. 타임머신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니까. 그런 것도 있겠지.”

 “위에서 올려다 보면 미셸 모양인 게 가장 큰 자랑거리지.”

 “그걸 위해 벚나무를 심은 거야? 정신 나간 츠루마키 가문...”

 나는 더 이상 내두를 혀도 없었다.

 “하루 뒤에 데리러 올게. 미사키 넌 오늘 하루 동안 뭘 이용하든 공짜니까 돈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바캉스 잘 즐겨~”

 “근데 헬로 해피 멤버들은 이곳에 없는 거지?”

 너무한 발언이겠지만, 솔직히 난 이 바캉스에서 바보 트리오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한 달 내내 시달렸으면 충분했잖아...! 푹 쉴 때는 쉬고 싶어. 옆에서 갑자기 신곡 떠올랐다고 노래 부르거나, 미셸 이야기를 꺼내며 머리 아프게 하거나 그런 짓을 하면 편히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다고!

 “아아. 그 바보 트리오에겐 ‘지금 미사키는 미셸이 사는 집에 있어’란 메시지랑 수수께끼 지도로 행선지를 다른 곳으로 돌렸으니 괜찮아. 지금쯤 남극 대모험을 하고 있을 거야.”

 “그 바보들은 7년이 지나도 내가 미셸인 걸 모르는 거야?!”

 어른이 되어도 철들지를 않는 거야? 그 바보 셋?! 내 머릿속에서 눈보라와 씨름하며 미셸을 외치는 바보 트리오의 상상이 떠올랐다.

 “그럼 다시 말할게. 바캉스 잘 즐겨~”

 미래의 나는 그 말을 하며 타임머신과 함께 사라졌다.

 “여기가... 7년 뒤의 세상...!”

 나는 딱 봐도 푹신푹신해보이는 침대에 몸을 던져 누워봤다.

 미래에서 바캉스라니 정말 꿈만 같다. 미셸이라는 중노동에서 벗어나 나는... 이곳에서 자유롭게 나의 탄생을 마음껏 기뻐하는 것이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겠지만 미래의 내가 내 신분으로 이상한 일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뭐, 쓸데없는 걱정이겠지. 다름 아닌 나잖아. 내가 무슨 코코로나 하구미, 카오루 씨도 아니고. 분명 내가 곤란할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시간을 보아하니 아침 7시인가. 배도 고프고 조식 먹으러 가야겠다.

 나는 방에서 옷가방을 찾았다. 가방 안에서 ‘FUN’이란 글자가 적힌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밖으로 나가 조식을 나눠주는 호텔 식당을 찾아갔다.

 호텔 식당에 찾아가자마자 나는 놀랐다. 자판기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형식인데, 무려 원하는 아무 요리를 주문하면 가져다준다고 한다. 고로케든 오조니든 케이크에 홍차든 뭐든 말이다.

 뭐든지라... 이 식당은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고 하니 일단 가볍게 오므라이스에 우동으로 시작하자. ...우동엔 고로케도 얹을까. 저, 절대 하구미가 그리운 게 아니다. 볶음밥의 종류는... 치킨라이스로 할까. 소스는 데미글라스 소스로. 우동의 종류는 키츠네(유부) 우동으로.

 주문하자마자 1분이 지나고 진동벨이 울려 나는 요리를 받으러 갔다. 아니, 주문한 지 1분밖에 안 지났는데? 조리를 하긴 했어? 여긴 음식마저 마법처럼 창조하는 세상이야?

 나는 오므라이스와 우동, 고로케가 올려진 쟁반을 들고 아무 빈자리에 앉아 시식에 들어갔다.

 푹신푹신한 계란옷... 숟가락으로 파고드니 안쪽에선 따끈따끈한 향기와 함께 볶음밥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란옷이 구멍이 나 달달한 데미글라스 소스가 볶음밥의 밥알에 스며들었고, 나는 그 볶음밥을 숟가락으로 퍼서 한 움큼 떠서 입김으로 열을 식힌 뒤 입에 집어넣었다. 달달한 데미글라스 소스와 계란... 푹식푹신한 계란과 부드러운 닭고기가 두부처럼 뭉개지며 볶은 밥알 하나하나가 입 안 곳곳으로 흩어져 뜨거운 기름의 맛을 전하고 있었다.

 다음은 키츠네(유부) 우동. 우선 국물용 숟가락으로 국물 맛을 봤다. 뭘 우린 건지 전문가도 아닌 난 모르겠지만 아무튼 감칠맛이 천천히 스며드는 진한 맛이 느껴졌다. 그 다음에 면. 젓가락으로 두툼한 면을 집어올려 후루룩 입 안에 넣었다. 맛 좋은 국물을 흡수한 면이었기에 맛있었다. 세 개 있는 유부도 하나 집어 먹어봤다. 담백한 유부도 맛 좋은 국물을 흡수한 상태였고 면과 달리 씹는 맛이 있어 씹을 때마다 배어 나오는 유부의 맛과 국물의 맛을 천천히 음미했다.

 다음은 고로케. 뜨끈뜨끈한 고로케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김으로 열을 식힌 뒤 한 움큼 베어먹었다. 입김만으로는 안전한 수준까지 내려가지 못한 열이 바삭바삭한 식감과 함께 입 안에서 진동했다. 그 속에선 감자의 단맛과 잘게 썬 돼지고기의 쫄깃쫄깃함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어서 나는 한 입 베어먹은 고로케를 우동 국물에 푹 담근 다음 다시 그 고로케를 베어 물었다. 국물에 담가져 바삭바삭함은 죽었지만 딱 좋게 국물의 맛이 배고 감자와 돼지고기에도 스며들어 아까와 다른 식감이 입 안에서 녹아내렸다.

 어느 것도 1분만에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공복을 지우는 최고의 맛이었다. 이게 미래의 기술력이란 건가.

 나는 조식을 아낌없이 먹어치우며 배가 차 있는 감각을 행복하게 감상했다.

 이제 30분 정도 있다가 수영장에 놀러갈까... 흠... 그래도 혼자 노는 건 좀 외로운데. 그, 그렇다고 바보 트리오가 나타나는 건 싫어.

 “““미사키 짱.””” / ““미사키.”” / “오쿠사와 씨”

 뒤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에 난 등을 돌려봤다. 토야마 씨에, 하나조노 씨, 리미, 야마부키 씨, 이치가야 씨, 카논 씨가 있었다. 모두 내가 알던 모습보다 한 단계 성숙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모두 모자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덤으로 리미는 초코 소라빵을 다람쥐가 도토리 먹듯이 먹고 있었다.

 뭐야, 뭐야. 얘네들도 와있던 거야? 어떡하지? 지금의 난 미사키이긴 해도 미사키가 아닌...

 “미사키 짱, 당황할 거 없어. 우리도 너와 마찬가지로 정신은 17세, 18세의 우리니까.”

 “네? 카논 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카논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 혼자 놀면 쓸쓸할까봐 미래의 내가 친구들도 이곳에 데려온 모양이다. 이 친구들은 과거와 미래의 자신이 바꿔치기된 건 아니고, 연령 조작 바디슈트로 연령을 조작한 게 전부라고 한다. 나에게 말 안 한 건 서프라이즈였다고... 정말이지... 이런 장난을 치다니. 코코로에게 완전히 물들었잖아, 미래의 나!

 

 30분이 지나고 우리들은 수영복으로 복장을 바꿔 수영장에 뛰어갔다. 정확히는 그냥 수영장이 아니라 물놀이 버전 놀이공원, 워터파크였다. 나는 민트색 캐미솔형 상의에 핫팬츠를, 카논 씨는 해파리 무늬가 하얗게 그려진 하늘색 원피스 수영복을, 토야마 씨는 남색 체크무늬에 주홍색 리본이 달린 브래지어형 상의에 주홍색 팬티형 하의를, 하나조노 씨는 하늘색 캐미솔형 상의에 하늘색 팬티형 하의를, 리미는 빨간 점 무늬에 빨간 끈 달린 튜브탑 비키니 상의에 빨간색 스커트형 하의를, 이치가야 씨는 남색 비키니를, 야마부키 씨는 파란색 비키니를 입었다. 살을 시원하게 노출했는데도 친구들은 여전히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후훗, 이 세계에서 포피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밴드래! 선글라스가 기본이래!”

 이유는 토야마 씨가 설명한 대로다. 토야마 씨는 자신이 유명인이 된 것에 엄청난 흥분을 발산하고 있었다.

 “마치 파스파레가 된 기분이야.”

 리미는 초코 소라빵 대형 튜브를 끌어안으며, 멋쩍게 웃고 있었다.

 “근데 왜 미사키는 선글라스가 없어도 되는 걸까? 카논 선배는 선글라스가 필요한데.”

 “하나조노 씨, 그야 난 맨얼굴을 까고 다니지 않잖아. 사람들은 날 미셸 얼굴로만 알아본다고.”

 “아하, 그렇구나!”

 헬로 해피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져도 나는 맨얼굴을 까고 다닐 수 있다는 게 뭔가 웃기다.

 “그나저나 너희들 미래의 원본이 여기서 마주칠 수도 있지 않아?”

 “포피파는 반짝반짝하고 두근두근하는 별을 찾으러 우주여행을 떠났으니 한 1년 동안 지구에 올 일이 없대.”

 “아... 머리가 아파와... 코코로가 생각할 법한 이야기가...”

 토야마 씨의 정보에 나는 헛웃음밖에 안 나왔다. 언제나 별, 별 외치더니 진짜로 별 찾으러 우주에 가다니...

 “미래의 나는 츠루마키 가문이 만든 초대형 아쿠아리움 관광에 떠났으니 여기에 올 일 없대, 미사키 짱.”

 “이쪽은 평범한 이야기라서 마음이 편해지네요.”

 나는 이 미래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매우 평범한 이야기를 듣고 힐링됐다. 평범함이란... 좋은 거구나...

 “있지, 이야기는 이만하고 빨리 수영장에 가지 않을래?”

 “찬성! 가자!”

 야마부키 씨의 말에 토야마 씨가 수영장으로 돌격했다. 우리들도 토야마 씨를 뒤따라 수영장으로 뛰어갔다.

 풍덩. 물에 빠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퍼졌다. 물의 시원함이, 여름 같은 더위에 녹아내릴 듯했던 전신을 감싸 기분 좋은 느낌을 자아냈다. 수영장의 깊이는 딱 배까지 물이 차오르는 높이였다.

 “방금까지 막 10월이 된 세상에 있었는데 이런 여름 기온에서 수영장이라니 신기해!”

 토야마 씨가 물 속에 한동안 잠수해 있다가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며 감탄사를 토해냈다.

 나도 저렇게 놀아야지. 모처럼의 바캉스... 어른스럽게 굴다가 후회를 남길 수는 없다. 여기선 동심으로 돌아갈 때다.

 나는 토야마 씨처럼 온몸을 수면 아래로 집어넣고 헤엄을 치며 물 속을 가로지르는 감각을 전신으로 느꼈다. 마치 물고기가 된 감각... 물 속에서 자유롭게 이동했다. 의미 따위 없다. 의미가 없어서 즐거운 것이다.

 “기분 좋다! 피로가 쫙 풀리는 느낌이야!”

 나는 물 속에서 빠져나오며 순수한 감탄사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미사키 짱, 입원했을 때는 걱정 많이 했는데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야.”

 “응, 리미. 걱정 많이 끼쳤지. 이제 걱정 안 해도 돼. 지금 한 달간의 피로가 확 빠져나가는 기분이야!”

 나는 날 걱정하는 리미에게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걱정을 불식시켰다.

 “기분 좋아보여서 다행이야, 오쿠사와 씨.”

 “이치가야 씨는 수영장에 안 들어올 거야?”

 이치가야 씨는 물에 들어오지 않고 근처의 파라솔 아래서 선베드에 누워 하늘 구경을 하고 있었다. 마치 셀럽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난 됐... 카↘↗미! 오타에! 너네 뭐해! 끌고 가지 마! 안 돼! 싫어! 으아아아아아!”

 물에 들어가는 걸 거부하는 이치가야 씨였으나, 토야마 씨와 하나조노 씨가 물에서 나와 이치가야 씨를 끌고 함께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치 헬로 해피에서 혹사당하는 내 단말마를 보는 느낌이다. 힘내, 이치가야 씨.

 “아리사, 모처럼의 미래의 수영장인데 선베드에 누워있기만 하는 건 아깝지 않아?”

 “그래도 다른 방법도 있잖아! 다짜고짜 물에 빠뜨리는 게 어디 있어?”

 야마부키 씨가 토야마 씨와 하나조노 씨의 행동을 옹호했지만 이치가야 씨는 수긍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평범한 여름의 수영장인데... 벚꽃이 흩날리니 계절 감각이 이상해지네.”

 “나도 그래, 미사키 짱.”

 내가 벚꽃의 비상식(非常識)을 지적하자 리미가 호응해줬다.

 이 미셸도의 수영장은 역시 미래답게 상상을 뛰어넘는 시설로 가득 차 있었다. 우선 돌고래, 해파리, 펭귄 등 로봇이 물 속을 헤엄치며 손님을 반기고 있었다. 기계지만 촉감은 진짜 같아 가짜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가끔 손을 깨물고는 하는데 간지러울 뿐 아픈 느낌은 없었다. 해파리는 당연히 만져도 독에 쏘이는 일은 없었다.

 “해파리가 잔뜩... 행복해...”

 특히 해파리 로봇의 경우 카논 씨가 잔뜩 만지고 껴안아 보며 행복해했다. 전에 해파리를 진짜로 만졌다가 쏘였다고 했지. 만져도 괜찮은 해파리라니 정말 꿈만 같겠지.

 나도 돌고래 로봇 위에 올라타 돌고래의 헤엄을 체험했다. 제트스키보다는 느리지만, 그래도 스릴이 느껴지는 체험이었다.

 “아리사 봐봐 나 물 위를 걷고 있어.”

 “그래그래 카스미, 자빠지지 않게 조심해라.”

 다음 소개할 건 특수한 신발. 이 신발은 신고 물 위를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신발이 놓여있는 곳에 원리를 설명하는 표지판이 있었지만 어려워서 읽다가 말았다.

 나도 토야마 씨를 따라 특수한 신발을 신고 수영장의 수면 위를 걸어 다녔다. 토야마 씨가 잘 걸어 다녀서 쉬운 줄 알았는데 발판이 불안정해서 생각보다 걷기 어려웠다. 이제 토야마 씨는 아예 뛰어다니기까지 하는데, 정말 대단하네.

 코코로나 하구미였으면 아예 공중제비 돌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겠지. ...안 돼. 미래로 바캉스까지 오면서 왜 내가 걔네를 떠올려야 하는 거야!

 그 밖에는 워터 슬라이드라던가 파도풀 등 워터파크에서나 보는 놀이터도 이용했다. 물론 평범하진 않았다. 워터 슬라이드엔 360도 회전하는 구간도 있었고, 파도풀엔 이안류 시스템이 있었다.

 

 그렇게 친구들과 실컷 놀고 점심 시간이 되었다. 점심 시간이 되니 이 근방은 뙤약볕에 지배되고 있었다.

 너무나도 더웠기에 우리는 워터파크의 노점 중 ‘히야시츄카(냉라멘)’라고 적힌 집을 지나칠 수 없었다.

 우리는 노점에 있는 자판기로 하야츄카를 주문했다. 육수와 고명은 조식을 먹었던 식당과 똑같이 아무거나 입력해도 다 주는 시스템으로, 일단 육수는 쇼유(간장) 육수로 골랐다. 고명은 토마토, 오이, 김, 새우, 오징어, 계란, 무순... 여기까지 와서 평범한 것만 고르기는 좀 그런데...

 “아리사, 기왕 비싼 재료로 시켜볼까? 큼직한 연어알이라던가, 장어라던가.”

 “카스미, 또 이상한 생각을... 아니, 이상하지만 뭐 원래 세계에선 다시는 못 볼 조합이겠지.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그럼 난 초코 소라빵을 얹...”

 “그건 아니지!”

 나도 카스미의 생각이 엉뚱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리사 말대로 다시는 못 볼 조합이다. 아니, 코코로에게 부탁하면 불가능하진 않으려나... 아무튼 나는 마지막 고명으로 로스트비프를 골랐다. 평소엔 뷔페에서나 보는 비싼 요리다.

 이번에는 몇 초도 지나지 않아 7명 분의 요리가 나왔다. 이곳은 조폐국에서 지폐를 찍어내듯이 요리를 어디서 찍어내는 걸까?

 쟁반 위에 7개의 히야시츄카가 유리그릇 위에 올라가 있었다. 7명 모두 각자의 색다른 고명을 올렸기에 어느 게 누구 것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적당히 빈자리를 찾아 시식을 시작했다.

 나의 히야시츄카는 로스트비프가 올라가 있는 것. 분홍빛의 두툼한 고기, 그 외에 알록달록한 각종 고명이 함께 있으니 요리가 매우 화려하게 보였다. 나는 시식하기 전에 젓가락으로 면과 고명을 전부 육수에 담가 섞었다. 차면서도 쫄깃한 면발, 아삭아삭하게 잘게 부서지는 오이, 육수에 젖어 눅눅해진 김, 상큼한 토마토, 씹는 맛이 있는 새우, 쫄깃한 오징어, 달달한 계란, 아삭하게 씹히는 무순... 그리고 두툼한 육즙과 흡수한 육수의 맛이 터져 나오는 로스트비프. 큭... 끝내주는 맛이다.

 “미사키 짱은 로스트비프를 얹었구나.”

 “카논 씨는 떡과 각종 과일을 얹으셨네요.”

 “응. 이 과일 전부 비싼 걸 썼는지 입 안에서 사르륵 녹아내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고명도 살펴보았다. 하나조노 씨는 햄버그, 야마부키 씨는 치즈, 이치가야 씨는 참치 대뱃살, 연어알 등 각종 비싼 해산물, 토야마 씨는... 장어와 쌀밥.

 “카스미... 히야시츄카에 장어덮밥을 섞는다는 발상은 왜 한 거냐?”

 “그야 쌀밥이 최고인걸. 아리사도 먹을래? 극상의 쌀이야.”

 “됐거든?!”

 아아... 토야마 씨와 이치가야 씨가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면 자꾸 코코로 때문에 내가 골머리 썩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오후는 VR 오락실로 가서 놀았다. 이곳의 VR 게임은 7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퀄리티를 갖추고 있었다. 게임 느낌은 전혀 없고, 정말 현실 세상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현실감을 자랑했다. 동물농장 게임에서 양털을 만질 때나 낚시 게임에서 물고기를 만질 때 등 촉각에도 장난 아닌 현실감이 전해져왔다.

 “제빵 게임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제빵 과정이 너무 간단해서 실망했어.”

 “현직의 사람의 평은 반칙이지! 사아야.”

 야마부키 씨의 터무니없는 불평에 이치가야 씨가 딴죽을 걸었다.

 “물 속에서 해파리에게 잔뜩 둘러싸였어...”

 “상상이 아닌 리얼한 하나조노 랜드를 보게 되다니...”

 동물 마니아 두 분은 천국이라도 다녀온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른 게임은... 에엑!”

 나는 다른 게임을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뭐야, 뭐야. 미사키? 어디 보자. 미셸 인형옷 입고 상점가에서 풍선 나눠주기 게임이네. 헬로 해피 월드의 미셸이 직접 감수했대. 해볼래!”

 “재밌어 보여! 함께 하자!”

 “싫거든! 대체 왜 여기까지 와서 미셸이 되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건데! 미래의 나는 왜 이딴 게임에 감수 같은 걸 하는 거야!”

 토야마 씨와 하나조노 씨는 재밌어 보인다고 눈빛을 반짝였지만, 나는 전혀 그러지 못했다. 내가 뭐 때문에 과로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다음은 노래방. AR 효과로 마치 관객이 잔뜩 있는 무대에 서 있는 연출을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오쿠사와 미사키 모습으로서 무대에 서서 노래한다니 뭔가 신기한 느낌이었다.

 “모두 이것 봐봐! 우리들은 전혀 모르는 포피파의 곡들이 잔뜩 있어!”

 “어머, 사아야 짱의 말대로네.”

 야마부키 씨의 말에 리미가 확인했다. 참고로 이곳 노래방의 번호책은 전자판이었다.

 “미사키 짱, 우리가 모르는 헬로 해피 월드 곡도 있어.”

 “정말이네. 제목도 딱 코코로가 생각할 법한 느낌이에요. 그치만 가사를 몰라서 부를 수 없겠죠.”

 “하하, 그러네.”

 미래에도 헬로 해피 월드가 있구나... 미래의 날 보면 당연히 알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이렇게 내가 모르는 신곡을 보니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미래에도 난 고생하고 있겠지만, 그래도 즐기고 있겠지?

 “미사키 짱, 이것 봐봐. 에어 악기도 있대.”

 “에어 악기?”

 “에어 기타 치는 시늉을 하면 기타 소리 나는, 그런 건가 봐. DJ 기기도 가능하대.”

 “그럼 모두 연주하며 노래 부르자! 곡은 CiRCLING! 원이 되자!”

 카논 씨의 발견에 토야마 씨가 흥분하며 단체 연주 이벤트를 발생시켰다. 귀찮지만 뭐... 오랜만에 DJ가 되고 싶긴 했고. 무엇보다 무대에서 오쿠사와 미사키로서 DJ 연주라니 분명 이런 노래방이 아니고서는 경험할 수 없을 테니까 해보고 싶다.

 나는 전자판을 통해 특정 위치에 DJ 기기를 설정하니 그곳에 DJ 기기가 생겨났다. 실체는 없어 만질 수 없지만 DJ 기기를 조작하는 시늉을 하니 정말로 소리가 났다. 그 후, AR 효과로 만들어낸 관객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미셸이 아닌 오쿠사와 미사키로서 무대에서 DJ가 됐다.

 

 다음은 바닷가에서 바다 구경을 하고 바다 근처의 초밥집에서 저녁밥으로 초밥을 먹었다. 그 후, 숙소로 돌아가 온천을 즐기며 내 생일의 남은 시간이 점차 줄어드는 걸 느꼈다.

 온천에서 나오고 모두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나는 지나가는 여자 직원의 이름에 눈길이 갔다. ‘미츠시마 미라이’... 분명 병원에서 위문 라이브했을 때 수제 과자를 준 그 여자아이와 같은 이름이다. 흑발에 눈밑의 점까지 생김새가 같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내 방. 친구들이 모여 마지막 즐거운 이벤트를 시작했다.

 “미사키 짱! 케이크 사왔어. 생일엔 역시 케이크지!”

 “전부 공짜니 사온 건 아니지만 말이야.”

 그 중 토야마 씨와 야마부키 씨가 커다란 딸기 케이크를 가지고 내 방에 찾아왔다.

 “이제 슬슬 막바지네.”

 “즐거웠어? 미사키 짱?”

 카논 씨는 나에게 즐거웠는지 안 즐거웠는지 물어봤다. 답은 당연한 거 아니야?

 “즐거웠어요! 엄청! 이렇게 하루가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건 처음 같아요!”

 정말로 즐거웠다. 정말로 하루가 아름다웠다. 이것이야말로 바캉스. 모든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우리도 미사키 짱에게 고마워해야지. 미래의 미사키 짱이 아니었으면, 미사키 짱의 생일이 아니었으면 우리도 즐길 수 없었을 테니까. 절이라도 할까?”

 “하하, 토야마 씨,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나는 과잉반응을 표현하려는 토야마 씨를 말렸다.

 “내일부터는 다시 모두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미셸로서 열심히 해야지. 에이, 에이, 오!”

 ““““““에이, 에이, 오!””””””

 왠지 우에하라 씨가 있으면 우는 소리를 했을 거 같지만 넘어가자.

 그리고 밤. 늦게까지 카드 게임하다가 대부분이 잠들고 마지막으로 나와 카논 씨가 남아있었다.

 “미사키 짱이 이렇게까지 즐거워하고 행복해해서 다행이야. 지금까지 수고했어, 미사키 짱. 많이 힘들었지?”

 “아니, 뭐... 헬로 해피에 있는 건 제 의지이니 반쯤은 자업자득이죠. 그래도 수고했다는 말을 들으니 좀 더 힘낼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 다행이야.”

 “무엇보다 제가 계속 해피 월드에서 힘냈기에, 바보 트리오가 좋아하는 미셸로 남았기에 이런 미셸도라는 바보 같은 섬이 있는 거 아니겠어요? 이 바보 같은 섬 덕에 미소 짓는 사람을 봤으니 힘낼 수밖에 없죠.”

 내 노력의 끝에 이런 섬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나는 미셸이란 힘든 업무를 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을 뜨니 한 번 본 듯한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한 번 봤던 사람까지.

 “눈을 떴어?”

 “돌아가는 길이야?”

 “응.”

 타임머신. 이제 원래 나의 시간대로 돌아가는구나.

 “다른 친구들은 전부 돌려보냈고, 이제 너만 돌려보내면 돼.”

 “미래의 나는 학창시절 잘 즐겼어?”

 “응. 7년 전 생활... 정말 풋풋해서 좋았어.”

 미래의 나는 웃고 있었다. 나만큼 충분히 즐긴 모양이었다.

 “있잖아. 미츠시마 미라이란 여자애 알아?”

 “응. 병원에서 봤던 여자애. 그리고 내 시간대에선 미셸도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 직원이지.”

 “내 기억 상 그 애는 시한부였을 텐데.”

 나는 나에게 수제 과자를 주던 그 아이를 떠올렸다. 시한부라 삶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우리를 위해 수제 과자를 만들어줬다.

 “그 아인 불가능을 극복했어. 헬로 해피의 모두를 좀 더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헬로 해피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됐지. 코코로는 미소의 기적이라고 했던가.”

 “그렇구나... 그 아이는 사는구나...”

 나는 기지개를 폈다. 정말 좋은 사실을 알았다. 시한부인 그 아이가 사는 것도 그렇지만, 내 노력이 무의미하지 않다, 그 사실만으로 나는 힘낼 수 있을 거 같았다.

 

 타임머신이 도착한 곳은 내 방이다. 아무래도 퇴원한 모양이었다. 나는 미래의 나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고 내 방 책상에 놓인 쪽지를 보게 됐다.

 ‘옷장에 오늘 헬로 해피 동료들에게 받은 선물이 있어. -미래의 오쿠사와 미사키-’

 미래의 나의 말대로 나는 옷장을 열어보았다. 그곳에는... 미셸 룸웨어가 있었다.

 7년 후에 선물받게 될 거란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아아, 날 힘들게 하는 바보 트리오이지만, 하루나 안 보니까 그리워 죽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