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 광고 포함

 

 갑자기 꿈의 진행이 끊기고 나, 우다가와 아코는 현실의 침대로 돌아왔다. 여름으로 진입하면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여름의 열기, 선풍기 바람으로도 해소는 무리라 여름의 열기는 아코의 온몸의 기운을 빨아먹고 있었다. 창문은 커튼에 의해 빛이 거의 차단되어 있기에 지금의 시각이 정확히 어떤지 알 수 없었다. 적어도 밤은 아니었다. 이 푹 잔 느낌... 아마 정오 12시는 지난 것 같다.

 학교라면 괜찮다. 오늘은 7월 2일 토요일. 학교에 가는 날이 아니다. 그리고... 내일, 7월 3일. 내일은 무려 아코의 생일. 모두로부터 대마희(大魔姫)의 탄생을 축하받는 날. 아코가 무척이나 기대하고 고대하는 날이야. 게다가 올해는 무려 아코의 생일이 일요일이라서 학교에게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하루 내내, 온종일 생일을 즐길 수 있다구!

 아코는 기지개를 펴면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뭉쳐버린 근육이 떨리는 이 감각... 최고야.

 핸드폰을 확인하니 웬 이상한 스팸 메일이 와있었다. ‘당신의 미래를 알려드립니다’...? 아코는 이런 이상한 스팸 메일 따위 바로 삭제해. 내용도 보지 않고.

 아코는 방 바깥으로 나갔다. 언니는... Afterglow 연습 때문에 외출한 것 같다. 아코는 연습 예정이 없다. 잠깐 물을 마시고 방으로 돌아와 NFO(Neo Fantasy Online)를 즐길 거야! 그리고 오늘 저녁 즈음에는...

 

 시간은 거슬러 어제, 7월 1일 금요일. 하네오카 여학원.

 “날짜 혼란을 막기 위해 UTC가 처음으로 겹치는 경도 180도를 기준으로 설정한 게 바로 날짜변경선이다... 그리고... 어이쿠, 수업종이 쳤군. 수업은 이만 정리하지.”

 수업이 끝나자 아코는 수업 중의 딴생각으로 떠올린 아이디어를 아스카와 롯카에게 전했다.

 “아코 생일 전날에 셋이서 함께 잠을 자서 일어나자마자 생일 축하 인사를 받고 싶다고?”

 “응. 주말이 생일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잖아.”

 “좋네. 왠지 청춘 같아. 하자, 아스카 짱.”

 “그러지, 뭐. 딱히 일정도 없고.”

 아코의 멋진 아이디어에 아코의 절ㅊ... 맹우, 아스카와 롯카가 승낙 의사를 보였다.

 “그래서 누구 집에 묵게? 롯카? 아코?”

 “내 방은 보일러실 근처라 매우 더워... 이 시기에 묵고 가는 건 추천하지 않아.”

 “아코는 이왕이면 친구네 집에서 묵고 싶어.”

 “그럼 우리 집으로 결정이네.”

 묵을 집은 아스카네로 결정났다. 빠르다, 빨라.

 “뭐, 그럼 카스미 선배랑 한 지붕에...! 윽! 포피파 팬으로서 배덕감이! 못된 상상까지 해버렸어!”

 “아, 아스카! 롯카가 또 할복 자세를!”

 “아, 정말! 일일이 호들갑 떨지 마! 그냥 친구 집에 묵고 가는 거잖아!”

 그렇구나. 아스카네에 묵으면 카스미도 볼 수 있겠지? 그것도 재밌겠는걸!

 

 그리하여 아코는 아스카 집에 가서 롯카랑 셋이서 아스카 방에서 한 박 묵을 예정이 있어. 맹우의 친목 도모회... 랄까? 아무튼 내일은 일어나자마자 친구들에게 생일 축하를 받을 예정이야!

 아, 기대돼... 내일의 아코의 생일이. 분명 계속 즐겁고, 즐거운 이야기의 연속일 거야.

 

 7월 2일 저녁. 아코는 예정대로 아스카 집에 왔어. 롯카도 함께. 아스카네 부모님께 폐가 되니 저녁은 이미 먹고 온 상태야. 밤은 우노 등 카드게임을 하며 셋이서 즐겁게 시간을 죽였지. 도중에 카스미도 참가했어. 친언니랑 함께 게임을 하는 아스카가 부럽더라. 나도 언니랑 함께 올걸.

 

 7월 3일 아침.

 “아코 짱, 생일 축하해!”

 “아코, 생일 축하해.”

 아코는 예정했던 대로 생일 시작부터 친구들의 생일 축하 인사를 받았어. 동시에 롯카에게 생일 선물도 받았어. 생일 선물의 정체는 바로 빛나는 드럼 스틱! 색깔은 까매서 마치 타천사의 무기 같아!

 분명 오늘은 아침부터 취침할 때까지 인생 최고의 즐거움으로 가득한 날이 될 거야. 생일은 역시 최고야!

 오늘은 일요일. 아침 준비는 등교를 위한 게 아니라 아스카와 롯카 셋이서 외출하기 위한 준비야. 옷은 집에서 미리 가져왔던 걸 입었어. 지금 시기가 여름이라 옷에 금세 땀 냄새가 배서 어제 입은 옷을 또 입을 수가 없거든.

 “카스미 선배는요...”

 “롯카, 우리 언니는 깨지 않아. 오늘 아침부터 나갈 거면 언니는 못 볼 거라고 어제도 말했잖아.”

 “이럴 수가...”

 카스미는 아침 내내 꿈나라에 있을 예정인가 봐. 어제의 아코랑 똑같네.

 

 7월 3일 아침 9시. 아코 일행은 우선 만화방에 왔어. 아스카가, 아코가 좋아하는 만화 한 권을 생일 선물로 사주겠대. 아코가 좋아하는 만화를 정확하게 모르고, 알더라도 이미 가지고 있거나 본 거라면 의미가 없으니 이렇게 직접 와서 아코에게 선택하게 한 모양이야.

 “어디 보자... 이건... ‘텟펜!!!’? 느낌표가 많네.”

 “아코 짱, 그건 부시로드 산하 성우 사무소인, 히비키 소속의 여성 성우 3인방이 뭉쳐서 진행 중인 유튜브 채널 성우 세 자매 팀Y를 원안으로 하는 만화잖아! 이번 여름엔 무려 애니까지 나온대!”

 “헤, 헤에... 그렇구나! 괴, 굉장히 재밌어 보이는걸! 아스카, 아코 이거 살래!”

 아코가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었지만 왠지 사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아코는 그 책을 샀다.

 이 뒤에 잔뜩 셋이서 쇼핑을 즐겼다.

 

 7월 3일 오후 3시. 아코 일행은 라이브 하우스 CiRCLE에 가서 Poppin'Party, Afterglow, Roselia, 헬로, 해피 월드!의 모두가 준비한 생일 파티를 맞이했다.

 “카→스↘↗! 너, 진짜!”

 “미안행~ 늦게 일어났지만 밥은 포기할 수 없었엉~”

 카스미는 늦잠 때문에 생일 주역인 아코보다도 훨씬 늦게 와서 아리사에게 혼이 났다.

 하지만 모두에게 미안한 말이 되겠지만, 파티는 완전히 만족스럽지 못했다. 왜냐하면 린린이 없었기 때문이다. 린린은 오늘 친척 장례식 때문에 급하게 일이 생겨서 이 파티에 참석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린린이 메일로 따로 만나 선물을 전해주겠다고 했으니... 그 때를 기다리자.

 

 7월 3일 오후 6시가 되기 직전. 아코는 CiRCLE에서 모두와 헤어지고 전철역 앞에서 린린을 기다릴 예정이었다. 여기서 린린을 오후 6시에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어라? 나나미?”

 “어, 아코 짱~”

 아코는 약속 장소로 가던 중 우연히 나나미를 만났다.

 “아, 오늘 생일이지? 그럼 챙겨줘야지. 그게 평범한 거니까. 자.”

 “와, 박쥐 모형 미니 장난감이야?”

 “응. 사은품으로 받은 건데 난 이미 있어서 필요가 없거든. 아코 짱이 가져도 돼.”

 “고마워.”

 길을 가다가 우연히 선물을 받다니 오늘 아코의 운은 절정 수준인가 봐. 굉장해!

 나나미의 선물을 받고 아코와 나나미는 곧장 각자가 갈 길을 갔다. 나는 오후 6시 조금 경과한 시간에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아, 린린!”

 그리고 기대하던... 린린의 모습이 사람들 사이에서 보였다. 이 시기의 오후 6시는 밝아서 린린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코 짱!”

 린린은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었고 초록불이 되자 아코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린린... 사람 많은데 괜찮으려나... 어?

 “린린!”

 아코, 당황했어. 엄청... 그야 웬 오토바이 한 대가 린린을 향해 달려갔으니까. 나는 재빨리 린린을 불렀어. 생략됐지만, 도망치라는 말이었어. 하지만 오토바이의 속도는 매우 빨랐고, 린린이 오토바이를 인지했을 때는 절대로 피할 수 없었어...

 “캬아아아아악!!”

 “뭐야! 치인 거야!”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소리를 질러 매우 시끄러웠지만, 아코에겐 잘 느껴지지 않았어. 린린의 몸이 가볍게 공중에 떠오르며 날아가는 순간을 눈에 담는 동안... 아코는 주변의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어. 그저 눈앞의 상황을 촬영하는, 삼각대 위의 카메라가 된 심정으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어.

 “린린...?”

 나는 나지막하게 린린을 불렀어. 오토바이에 치이고 멀리 날아갔지만... 피가 엄청 흐르고 있었지만...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아코는 린린이 쓰러진 곳까지 달려가 린린을 끌어안았어. 도중에 아스카가 사준 만화책이나 쇼핑하면서 산 것들 등 짐이란 짐은 모두 던져버리고.

 “린린!”

 피가 막 흘러내려 아코의 손에도 감기기 시작했지만, 아코는 아랑곳하지 않고 린린을 불렀어. 린린의 뺨을 어루만지면서 계속해 크게...

 “린린!!”

 크게 더...

 “린린!!!”

 목이 터져라...

 “린린...!!!!”

 린린을 불렀어.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린린은 대답하지 않았어. 린린의 감긴 눈, 닫힌 입은 영원히 아코를 무시할 것처럼 무척 차가웠어...

 

 얼마 뒤 구급차가 오고 아코는 지인으로서 동석했어. 병원에 도착하고 이런저런 일이 진행된 끝에 린린의 죽음이 확정됐어. 아, 길게 표현할 거 없겠지. 린린은 죽었어.

 오토바이 운전자는 음주 운전자였대. 술 먹고 운전하다 린린을 치인 거야. 우연히. 참으로 어이없는 우연...

 어째서... 어째서... 아코의 생일에 린린이 죽어야 하는 거야...? 최고의 날이어야 하는데...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면 안 되는데... 대체 어째서...? 아니야... 아코의 생일이었기에 린린이 죽었어. 아코의 생일을 직접 축하하러 오려고, 아코에게 직접 선물을 전해주려고 오다가 린린이... 죽은 거야... 전부 아코가 나빠...

 아무리 손을 씻어도 손에 기억된 끈적거리는 피의 감각은, 차가운 살의 감촉은... 사라지지 않았어. 그 이상으로 아코 머릿속에 각인된 린린의 시체는 사라질 수 없었어. 아아, 모든 게 악몽이었으면...

 린린...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거야? 아코의 지독한 어휘력 부족에 말문이 막힐 때, 아코가 악보를 볼 수 없을 때, 아코가 유키나 씨네 밴드에 들어가고 싶었을 때, 아코가 밴드에서 뛰쳐나왔을 때 매번 아코와 다정하게 함께 있어주고, 아코를 위해 뭘 해줬던 린린은 이제 세상 어디에도 없는 거야? 거짓말... 거짓말이야...

 린린과 NFO를 하고 싶어. 린린과 밴드를 하고 싶어. 린린과 이야기하고 싶어. 그 모든 걸 포기하고 싶지 않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하...암. 아코는 너무 지친 나머지 병원 벤치에 앉아있다 그만 졸고 말았어...

 

 아코는 덜덜 떨리는 선풍기 소리를 느끼며 침대에서 일어났어. 침대... 아코 방의 침대야. 병원에서 졸고 부모님이 집까지 아코를 옮긴 걸까. 응? 하지만 아코 잠옷인데. 옷까지 갈아입혀 줬나?

 아코는 ‘지금의 아코에게 있어 어제에 해당되는’ 일을 떠올렸어. 즐거웠고, 그대로 즐겁게 끝나야 할 아코의 생일이 린린의 죽음으로 마무리된 것.

 그래, 린린은 죽었어. 이제 없어. 그럼, 하나가 되어 살아가? 그걸로 모든 게 괜찮아지는 걸까? 그럴 리가 없잖아...

 아코는 핸드폰을 들어 지금 시간을 확인하려고 했어. 아코가 얼마나 잤는지 보고 싶었거든. 그런데...

 “어라? ...7월 2일? 4일이 아니라?”

 핸드폰의 시계가 참 이상했어. 오늘이 7월 2일이래. 아코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핸드폰을 좀 더 조작했다가...

 [당신의 미래를 알려드립니다]

 분명히 7월 2일에...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제목만 확인하고 지웠을... 그 메일을 보았어. 틀림없이 아코가 단순한 스팸 메일이라 단정 짓고 내용도 안 보고 지웠던 메일이야.

 똑같은 메일이 다시 온 건가? 아니면 핸드폰 시계대로 지금이 진짜 7월 2일? 린린이 죽지 않았어?

 아코는 곧장 린린에게 메일을 보냈어.

 [린린? 좋은 아침.]

 그러자...

 [아코 짱, 지금은 아침이 아니야. 벌써 정오가 지났다구. 주말이라도 늦게 자고 일어나는 습관은 고치는 게 좋아.]

 장문의 글이 순식간에 날아왔다. 이 솜씨... 틀림없이 린린이야.

 이걸로 확실해졌다. 린린은 죽지 않았어. 그럼, 린린이 죽고 그랬던 건... 전부 꿈? 악몽?

 아코는 다시 그 메일을 찾아봤어. 아코의 미래를 알려준다던, 그 수상한 메일을.

 [시로가네 린코는 20XX년 7월 3일 18시 5분 20초에 사망한다.]

 그 메일에는... 틀림없이 아코의 최악의 미래가 쓰여있었어.

 미래? 이게 아코의 미래? 그럼 그건 꿈이 아닌 거야? 이대로 가면 또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거야? 그건 절대로 싫어! 그래도... 다행이야... 미리 안다면 반드시 막을 수 있잖아?

 ...그 때까지의 아코는 그런 순진한 희망을 품고 있었었어.

 

 7월 2일 저녁. 아코는 롯카와 함께 아스카네 집에 찾아왔어. 아스카 방에서 하는 게임도 동일. 하지만 게임 결과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어. 게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아코가 일일이 기억할 리가 없으니까 2회차 플레이라고 해도 아코가 바꿀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거든.

 

 7월 3일 아침.

 “아코 짱, 생일 축하해!”

 “아코, 생일 축하해.”

 일어나자마자 친구들의 리얼한 생일 축하 인사를 받았어. 롯카의 생일 선물 역시 빛나는 드럼 스틱. 역시 아코가 한 번 겪었던 그대로 흘러가고 있어.

 “음? 아코 짱, 별로 안 기뻐하는 거 같은데... 맘에 안 들어?”

 “응? 아니, 아니야. 맘에 쏙 들어!”

 이미 한 번 겪었던 이벤트라 아코의 기쁨은 전과 똑같지는 않았다. 그게 무심코 아코의 표정에 드러나 트러블이 생길 뻔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어찌어찌 넘어갔다.

 

 7월 3일 아침 9시.

 “어디 보자... 이건... ‘텟펜!!!’? 이게 뭘까?”

 아코는 저번과 똑같은 만화책을 골랐어.

 “아코 짱, 그건 부시로드 산하 성우 사무소인, 히비키 소속의 여성 성우 3인방이 뭉쳐서 진행 중인 유튜브 채널 성우 세 자매 팀Y를 원안으로 하는 만화잖아! 이번 여름엔 무려 애니까지 나온대!”

 “헤, 헤에... 재밌어 보이는걸! 아스카, 아코 이거 살래! 여기 나오는 검은색 트윈테일 머리 여성이 유키나 씨처럼 멋지고, 연보라색 머리의 여성이 왠지 롯카 같은 느낌이 들고, 노란색 머리의 여성은 왠지 아코 같은 느낌이 나!”

 “어라? 아코 짱, 이 만화 본 거야?”

 아차차, 나도 모르게 그만. 저번에 만화책도 읽고, 애니도 봤었다.

 “아, 아니 그냥 그럴 거 같은 예감이 든 거야! 아, 아스카! 이걸로 살게!”

 “응.”

 만화방에서의 일도 과정에 살짝 트러블이 있었지만, 저번과 똑같이 마무리됐다.

 

 오후의 CiRCLE에서의 생일 파티도 큰 차이 없이 마무리됐다. 이제 남은 건... 린린과의 만남.

 아코가 할 건 간단했다. 저번의 린린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사고를 당했다. 그렇다면 린린이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게 아코가 미리 건너가 있으면 그 사고가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오후 6시가 되고, 아코는 린린이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게 미리 건너가 있었다.

 “린린!”

 “아코 짱!”

 이걸로 린린의 죽음은 회피... 어.

 “린린!!”

 옆에서 린린이 쓰러졌다. 린린의 사망 이벤트를 무사히 회피했다 안심하고 있던 아코는 린린의 이변을 알아차리는 게 늦었다.

 린린은 그냥 쓰러진 게 아니었다. 머리 한가운데에선 피가 순식간에 불어나고 있었고, 그 옆에는 박살 난 화분이 있었다. 건물 위에서 화분이 떨어져 린린의 머리에 직격한 것이었다.

 그 뒤의 일은 똑같이 흘러갔다. 린린은 병원에 실려갔지만 삶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아코는 실패한 것이다.

 이건 단순한 실패가 아니었다. 아코는 깨닫게 됐다. 미래의 메일의 의미를. 그건 미래가 이러니 바꾸라는 게 아니었다. 그건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미래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선고였다. 즉, 아코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린린이 7월 2일 18시 5분에 사망하는 미래는 변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 아직이야! 또, 또... 잠에 빠지면 다시 7월 2일로 돌아갈 거야! 그러겠지! 그럴 거야!”

 아코는 자신의 절망도 린린의 죽음도 외면하고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어떻게든 잠에 빠지려고 전전긍긍했다. 그렇게 잠의 마수에 사로잡히고...

 다시 7월 2일로 돌아왔다. ...하지만.

 

 실패했다. 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

 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

 아코는 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

 뭐가 문제지. 뭐가 문제야. 대체!

 세 번째 플레이에선 아코는 린린과 만날 약속 장소를 바꿨다. CiRCLE 앞으로. 거기에 일정이 한가한 사람들이 남아서 같이 린린을 기다리겠다고 하는 걸 어떻게든 못하게 막았다. 아코는 마음속으로 실패할까 불안하고 두려웠기에 다른 사람이 린린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린린은 죽었다. CiRCLE 주변에 대체 왜 있는 건지 모를 야자수의 코코넛이 떨어져 린린의 머리를 직격했다.

 네 번째 플레이에선 아코는 아예 린린과의 약속을 취소했다. 하지만 린린이 계단에서 실족사했다는 전화가 돌아올 뿐이었다.

 다섯 번째 플레이에선 코코로에게 부탁해 검은 양복 사람들을 린린의 호위로 붙였다. 그러나 그 만능에 가까운 검은 양복 사람들의 호위에도 린린은 죽었다. 

 여섯 번째 플레이에선... 일곱 번째 플레이에선... 여덟 번째 플레이에선... .... ... ... ... ...

 아코는 더 이상 세는 걸 관뒀다. 이미 수십 번이나 도전했는데도 린린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린린은 그 메일이 말한 대로 정확히는 7월 3일 18시 5분에 사망했다. 아코는 그 메일이 예고한 미래를 도저히 뒤집을 수 없었다.

 아코는 더 이상 한계였다. 더 이상 린린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건 무리였다. 저번과 뭔가를 다르게 해봐도, 츠루마키가의 힘을 빌려도 린린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우연에 의해 죽었다.

 아코는 마치 챗바퀴를 도는 햄스터가 된 기분이었다. 아무리 도전해도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 아코 짱... 표정이 어두운데... 괜찮아?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아프면 굳이 우리 집에 묵을 거 없이 집에 가서 푹 쉬어.”

 아코는 아스카네 집에 왔다. 이제 더 이상 린린을 구하기 위해 시도해볼 만한 아이디어는 없었다. 그저, 반복되니까 반복할 뿐이었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해도. 

 대체 몇 번이나 반복한 건지 모를 우고를 하고, 대체 몇 번이나 반복된 건지 모를 축하 인사를 받고, 대체 몇 번째인지 모를 외출과 파티를 맞이했다. 이제 즐거움은 없다. 즐거울 수 없다. 이 뒤에 린린의 죽음이 있는 한.

 그대로 아코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린린은 처음 때와 같이 오토바이에 치여 죽었다.

 “...”

 아코는 두 눈을 꼭 감고 날아간 린린을 보지 않은 채 막 뛰어갔다.

 아코, 두 손 다 들었어. 꼴사납게 기브 업이야. 그냥 내일이 와줘. 불가능한 희망은 쥐여주지 마. 린린이 없는 내일을 받아들일게. 받아들이... 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젠장!

 아코는 뛰어가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우연히 자신에게 무한한 시간이 쥐어졌는데, 이토록 무력하고 어리석고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저기... 괜찮아? 아코 짱?”

 그러던 중 누군가가 아코에게 말을 걸었다. 방금 전에 사은품 선물을 준 나나미였다.

 “저쪽에서 사고라도 났나. 구급차 소리가 나. ...아코 짱? 계속 말이 없는데... 괜찮아? 표정도 좋지 않아 보이고.”

 “아니야... 아무것도...”

 아코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있는 그대로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그야 이런 이야기 믿어줄 리가 없으니까. 코코로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도 대충 누군가가 린린의 목숨을 노리는 것 같다는 식으로 진실을 털어놓지 않았다.

 “뭔가 고민이 있다면 평범하게 털어놓아도 돼. 우리 친구잖아.”

 “친구...”

 아코는 나나미의 말에 귀가 섰다. 아코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아이디어는 이미 한계까지 다 쥐어 짜냈다고 생각한다. 이제 아코 혼자로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럴 의지조차 더 이상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자니 진정 믿어줄지 그게 걸려 좀처럼 아코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코... 고민이 있긴 하지만... 믿어줄 거 같지 않아서... 뭔가 괴담 같은 일이라...”

 “괴담? 그건 이 나나미 짱의 특기야. 무슨 이야기든 믿어줄 테니까 말해봐. 그렇게 신용이 안 가면 괴담의 증거... 같은 걸 보여주면 되고.”

 “증거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네?”

 아코는 깨달았다. 린린이 죽게 되면서 증거로서 확실해진 것을.

 

 아코는 나나미와 함께 병원에 왔다. 린린의 죽음이 확정된 병원이었다. 나나미는 린린의 죽음을 확인했고, 아코는 나나미에게 그 미래의 메일이란 것을 보여줬다.

 “7월 2일에 이 메일이 왔다라... 확실히 보낸 날짜를 보면 이 메일은 어제 온 거야. 그리고 메일의 내용대로 린코 선배는 죽었지.”

 린린이 죽게 되면서 메일의 예언은 진짜가 되었다. 그리고 메일엔 보낸 날짜가 있으니 그 날짜를 보여주는 것으로 메일 내용이 예언이란 걸 제삼자에게 증거로 보여줄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린코 선배의 행적을 아무리 바꿔도 결과적으로 이 20XX년 7월 3일 18시 5분 20초에 린코 선배가 죽게 됐다는 말이지?”

 “응. 나나미... 아코가 만약 한 번 더 과거 7월 2일로 돌아가게 된다면 린린을 죽지 않게 할 방법이 있을까? 아코... 더 이상 모르겠어...”

 거기에 아코는 같은 시간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란 이야기도 했다. 그것은 증명할 무언가가 없고 이야기가 복잡해질 뿐이지만, 아코는 나나미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얻을 각오로 전부 털어놓았다.

 “정확히 20XX년 7월 3일 18시 5분 20초에 린코 선배가 죽는 거라면 해볼 만한 방법이 하나 떠오르긴 해.”

 “저, 정말?”

 나나미는 눈 깜빡할 시간의 고민조차 하지 않고 아코에게 방법 하나를 전수해줬다. 아아, 그야말로 신의 광채가 느껴져...

 “아코, 나라마다 시간이 다 다른 거 알아?”

 “응. 학교에서 배웠어.”

 분명 이번 주 금요일 수업 때도 관련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자세히는 기억 안 나지만.

 “그래, 예를 들어 필리핀은 일본 시간보다 한 시간 느리고, 괌은 일본 시간보다 한 시간 빨라. 만약 린코 선배가 필리핀에 가 있다면 한 시간 늦게 죽게 되고, 괌에 가 있다면 반대로 한 시간 빨리 죽게 되겠지. 그리고... 날짜변경선도 알지?”

 “어어...”

 단어 자체는 들어는 봤는데... 아코, 기억이 안 나.

 “대충 날짜 혼란을 막기 위해 지구에 그은 선이야. 이 날짜변경선을 기준으로 서에서 동으로 넘어가면 날짜가 하루 늦어지는 거고, 반대로 동에서 서로 넘어가면 날짜가 하루 빨라지는 거지. 즉, 린코 선배가 날짜변경선 동쪽에 있는 하와이에 있다가 2일 자정에 날짜변경선을 넘어간다 치면? 2일에서 바로 4일로 건너가게 되면서 린코 선배의 인생에서 20XX년 7월 3일이 사라지게 돼.”

 ...아코, 전혀 이해 못했어.

 “이, 이 예고대로라면 아코가 7월 2일에 깼을 때 린린에게 대충 24시간 정도의 유예밖에 남은 거 아니야?”

 “만약 그 메일이 7월 2일 18시 5분 20초에 와서 24시간 뒤에 린코 선배가 죽는다, 라고 왔다면 그러겠지. 하지만 이 메일엔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 몇 초, 표준시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예언을 적었어. 그렇다면 표준시의 기준 안에서 린코 선배에게 7월 3일을 없애버리면 죽음을 회피할 수 있게 돼.”

 응. 알겠어. 아코, 전혀 모르겠어. 나나미의 설명에 잠들지 않게 정신줄 붙잡는 게 고작이야.

 “아, 아무튼 린린을 7월 2일에 하와이로 보낸 뒤에 7월 2일 자정에 날짜변경선을 넘으면 되는 거지?”

 “응.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냥 하라는 대로 하면 돼.”

 “아니, 무리가 있잖아! 다짜고짜 해외여행을 한다는 게 말이 돼!”

 “어라... 평범한 거 아니었나...”

 “당연하지. 코코로가 아니고... 선... 아!”

 아코 드디어 린린을 살릴 길이 보인 것 같아!

 

 아코는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7월 2일 아침에 깨어났다. 아코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코코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코코로! 부탁이 있어!”

 아코는 코코로를 만나 미래 메일을 보여줬다. 그리고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대충 날짜변경선을 통해 린린의 7월 3일을 없앨 예정이라고 계획을 코코로에게 전했다. 코코로도 잘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아무튼 즐거울 거 같다며 흔쾌히 스마일호로 아코와 린린을 잠시 하와이로 보내줬다. 린린은 당연히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모양이지만, 어쩔 수 없어. 린린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과연 이번에 아코, 린린을 구할 수 있을까? 아니, 구해야만 해. 아코와 린린은 7월 3일 즉, 아코의 생일을 맞이할 수 없게 되지만 괜찮아. 아코의 생일 같은 것보다 린린이 훨씬, 훨씬, 훨씬! 중요해! 아예 앞으로 평생 아코, 생일 맞이할 수 없어도 돼. 린린과 함께 있는 시간이 훨씬 즐거우니까!

 

 일본 표준시 7월 4일 아침. 아코는 스마일호에서 내렸다. 세상에 둘도 없는 절친과 함께.

 

 

후기

 

꽤 시간에 쫓겨서 마무리가 빨랐지만, 꽤 만족스럽게 나왔네요.

 

유료 광고 개그는 한 번 해보고 싶어서 해본 겁니다.


참고로 날짜변경선 아이디어는 여기서 발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