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 와카미야 이브는 방과 후에 린코 씨와 함께 상점가에 갈 약속을 했습니다. 지난번에 Pastel*Palettes의 옷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무려 나의 생일에 맞춰 만들어주겠다고 해주셨습니다. 오늘 만나서 이야기할 건 Pastel*Palettes 모두의 몸 사이즈나 의상의 전체적인 방향성입니다. 목적지가 상점가인 건 옷감 등을 살 예정이라고 린코 씨가 말씀하셨습니다.

 함께 하나사키가와 여학원의 교복을 입은 채 저희 둘은 전철에 타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하~암... 아, 죄송해요. 와카미야 씨. 어제 게임 때문에 조금 늦게 잠들었거든요.”

 “아니에요. 오늘 절 위해 시간을 내주신 거니, 굳이 사과를 하실 필요는 없어요.”

 후배에게도 격식을 차리시는 린코 씨... 무사도의 정신이 보입니다!

 “아, 감사의 허그를 해드리는 걸 깜빡했네요!”

 “그건... 사양할게요... 이런 사람이 많은 곳에선 부끄 으앗...!”

 “허그! 허그! 허그! 감사해요, 린코 씨.”

 린코 씨가 뭐라고 하신 것 같지만 저는 무턱대고 린코 씨에게 감사의 허그를 잔뜩 했습니다. 온기를 주고 받는 이 느낌... 이것이 허그의 매력!

 “의상의 방향성은 무사의 예복이라고... 했죠.”

 “네. 부디 무사도한 느낌으로 부탁드려요. 아, 히나 씨 취향을 위해 룽한 느낌도 챙겨주세요.”

 “룽... 한 느낌도 말이죠... 벌써 잘 될 거란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네요...”

 히나 씨와 린코 씨는 똑같이 학생회장 직책에 서 있지만 성격은 정반대입니다. 세상엔 온갖 개성이 있다는 거겠죠.

 “하...암.”

 어라? 린코 씨에게 하품이 옮은 걸까요? 저는 졸릴 만큼 어제 늦게 자지도 힘을 쓴 적도 없는데, 갑자기 온몸이 나른해졌습니다... 눈꺼풀도 이상하리만치 무겁네요...

 “린코 씨...? 졸고 계세요?”

 간신히 뜨고 있는 시야 너머엔 눈을 감고 중력에 몸을 기댄 린코 씨가 계셨습니다... 제 말에도 반응이 없는 게 잠에 빠지신 것 같았습니다... 저 역시 꿈나라로 갈 것 같네요...

 

 누군가가 제 몸을 흔드는 감각... 무사도! 누가 절 공격하고 있는 걸까요. 이 때는 제빨리 검으로 상대를...

 “와카미야 씨... 일어나세요...!”

 “어라, 린코 씨?”

 저는 정신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방금 전까지 잠에 빠져있었던 모양입니다.

 “와카미야 씨, 깨셨나요? 주, 주변을 보세요. 뭔가 이상해요...”

 “주변이요?”

 저는 린코 씨의 말대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주위의 승객들은 모두 잠에 빠져있었습니다. 무슨 늦은 밤 퇴근 전철도 아니고 승객들이 전부 잠에 빠져있다는 게 말이 될까요? 그 이질적인 풍경에 제 안에서 조금씩 겁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철 바깥의 풍경... 도심다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울창한 나무만이 감옥 창살처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날이 저물고 있는지 새빨간 노을의 하늘이 불길하게 나무의 색깔을 주황색으로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철의 속도도 매우 빨랐습니다. 이상하리만치 매우.

 전철 안은 잠든 사람투성이, 전철 바깥은 한적한 나무투성이. 고요함과 조용함만이 가득한 이곳에선 덜컹덜컹하는 전철 소리만이 으스스하게 울리고 있었습니다.

 “이 전철... 어디로 가고 있는 거죠?”

 “그게... 저도... 모르겠어요. 제가 깨고 나서 와카미야 씨를 깨우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거든요...? 보통 이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음 역에 도착해야 정상인데... 심지어 이렇게 빠르게 달리고 있는데도...”

 ...??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기묘함으로 가득한 이 상황... 대체 저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린코 씨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은 마치 거울에 비친 상과도 같았습니다. 저도 분명 이런 얼굴로 겁에 질려있을 테니까요.

 “휴, 휴대폰은요?”

 저는 바로 구원의 수단을 떠올렸습니다.

 “전화도 안 통하는 구간이라고 떠요... GPS도 먹통이고요...”

 “그럴 수가...”

 저는 린코 씨의 말에 바로 제 휴대폰을 꺼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전원은 켜지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전화 기능도 GPS 기능도 모두 먹통... 그것은 마치 이곳이 현세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아 섬뜩했습니다.

 “무, 무사도...! 무사도! 무사도! 무사도의 정신만 있으면 두려울 건 없어요! 이럴 때를 대비해 언제나 죽도를...! 이걸로 악령이든 뭐든 나와도 퇴치할 수 있어요!”

 “역시 검도부원...? 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요.”

 저는 죽도 가방에서 죽도를 꺼내 어떤 악령이 튀어나와도 때려잡을 수 있게 자세를 잡았습니다.

 “이, 일단... 다른 사람들도 깨우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 그럴까요?”

 “저는 초면인 사람에게 말 거는 건 무리라서... 죄송하지만, 와카미야 씨가 해주지 않을래요...?”

 “맡겨만 주세요...!”

 저는 건너편 좌석에서 주무시는 승객에게 다가갔습니다. 그 승객부터 고른 건, 같은 하나사키가와 교복을 입었기에 승객 중에서 가장 친근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5분이나 지났습니다. 5분 동안 전 흔들거나 큰소리를 내는 등 온갖 방법을 써봤지만 그 승객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새근새근 자는 소리가 없었다면 전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저는 그 여학생 말고도 다른 승객도 깨우려고 해봤지만 모두 깨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달리고 있다니... 여긴 정말 현실 속인 걸까요?”

 린코 씨의 의문은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벌써 10분이나 지났지만 전철은 계속 달리고 있었습니다. 풍경은 여전히 나무, 나무, 나무, 나무, 나무... 숲속을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10분 넘게 온통 나무로 가득한 풍경만이 계속되는 구간이 일본에 존재하는 걸까요?

 “린코 씨... 아무래도 승객들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요... 전철의 맨 앞칸에 가볼까요?”

 “네... 거기라면 이 전철을 움직이는 운전수 분이 계실 거고, 계시지 않거나 자고 계셔도 뭐라도 할 수 있겠죠.”

 저희가 그렇게 맨 앞칸으로 움직이려고 할 때, 풍경에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주변이 새까맣게 변했습니다. 해가 진 게 아니었습니다. 무언가가 해를 가린 거였죠. 바로 터널 안으로 들어간 거였습니다.

 “히이익...! 악령은 물러나라! 체스트!”

 “와카미야 씨! 지, 진정하세요! 악령이 나온 게 아니에요!”

 전등이 거의 죽어버린 암흑에 가까운 터널. 저와 린코 씨는 마치 지옥의 입구라도 들어가는 느낌이라 계속 공포에 떨었습니다.

 터널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전철의 속도가 빨랐기에 금방 휙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저와 린코 씨의 마음엔 박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암흑에 대한 공포가... 터널이 아니더라도 이대로 날이 지면 터널 속과 같은 암흑이 찾아오게 됩니다. 저희 둘은 그 암흑 속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요.

 “어... 이 느낌은...?”

 “설마...”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철의 속도는 점차 줄기 시작하더니 덜컹덜컹 소리가 멎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드디어 정차, 한 겁니다.

 전철은 정차하자 평범하게 문이 열렸습니다. 이러니 지극히 평범한 전철처럼 보이더군요. 하지만 저희 둘은 선뜻 바깥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정차는 했지만 어느 역에 정차한 건지 설명이 없었고, 창밖으로 보이는 역의 풍경은 사람 하나 없는 무인역이었기에 그곳에 가기가 무서웠습니다.

 “와카미야 씨... 가죠... 여기에 있어봤자... 우리가 있던 곳보다 계속 멀어지기만 할 거예요...”

 린코 씨는 먼저 다짐하고 저에게 하차를 제안했습니다. 역시 상급생, 역시 학생회장... 든든해요! 저는 그렇게 린코 씨의 손을 잡고 공포의 전철에서 하차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하차하자 바로 전철의 문이 닫히고 바퀴를 움직였습니다. 마치 저희가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 마냥. 저희는 그렇게 공포의 전철에서 벗어났습니다. 다음 공포의 무대에 선 채.

 “무인역... 혹시 이건... 일본 전통의 괴담... 키사라기역 아닌가요...”

 “전통... 이라 할 정도의 역사가 있진 않을 거 같지만, 그런 거 같아요...”

 저는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이 상황은 리미 씨에게 들은 괴담 ‘키사라기역’ 그 자체였으니까요.

 “와카미야 씨, 괜찮으세요? 무서운 이야기 싫어하시나요?”

 “와, 완전 괜찮아요! 괴담 하면 요츠야 괴담, 일본의 전통적인 문학이에요.”

 아무래도 제 안색이 정상이 아니었던 것인지 린코 씨는 절 신경 써주셨습니다. 안 됩니다. 이래선 제 무사도가 울고 말 거예요.

 일단 저와 린코 씨는 무인역에 발을 옮겼습니다. 이대로 굳어있어봤자 해결될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요.

 

 일단 반대쪽에서 전철을 탄다, 란 방법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전철이 언제 오는지 역 어디에도 쓰여있지 않았고, 전철이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호시야미]

 저희가 이 무인역에서 유일하게 얻을 수 있었던 정보. 이 역의 이름.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래도 역 이름이 키사라기가 아닌 게 다행... 인 걸까요?

 결국 날은 저물었습니다. 노을은 하늘에서 사라지고, 저녁이 찾아왔습니다. 저희에게 어둠이란 공포를 안겨주면서.

 그래도 자판기가 있었기에 이대로 저녁을 굶을 일은 없었습니다. 음료 말고도 우동, 라멘까지 주문할 수 있는 옛날 자판기. 다행히 작동하기에 저와 린코 씨는 수중에 있던 돈으로 자판기의 음식을 샀습니다. 애초에 쇼핑 목적으로 전철을 탔던 것이기에 수중의 돈은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저와 린코 씨는 우동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공포에 정신이 극한에 내몰린 탓인지 우동의 맛은 잘 감상할 수 없었습니다. 음료인 라무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린코 씨, 저희... 어떻게 돌아가죠? 선로를 따라 걸어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할 테고...”

 전철은 그 빠른 속도로 10분 넘게 달리고 달렸습니다. 제가 잠든 시간까지 포함한다면 도보로 돌아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의 영역이었습니다.

 게다가 리미 씨가 말하길 키사라기역 괴담에선 선로를 따라 돌아가다가 행방불명된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그 암흑에 가까운 터널을 생각하니 선로를 따라 돌아갈 생각이... 용기가 들지 않았습니다.

 “모르겠어요...”

 “여기... 현실이 맞긴 할까요?”

 “자판기가 멀쩡히 돌아가는 걸 보면 현실일 거예요... 아마도...”

 린코 씨의 대답은 굉장히 자신이 빠져있었습니다. 상황 자체도 그러고도 남을 만큼 매우 절망적이고 암울했습니다.

 이래선 안 되요, 저! 저는 무사도의 정신을 가진 무사이자,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아이돌 Pastel*Palettes의 키보더라고요!

 “린코 씨 말대로 자판기가 멀쩡히 돌아가는 이상 이곳은 현실...! 그리고 이 자판기를 관리하는 사람이 분명 존재하겠죠! 역 바깥으로 한 번 가봐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 아니, 있을 거예요!”

 “그래도... 이 어두운 시간에 바깥에 나가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요...”

 “두려울 건 없어요! 제 손에 이 죽도가 있는 한! 제 무사도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 캬아아아악!”

 “캬아아악!”

 쨍그랑. 역 너머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소리에 저와 린코 씨는 반사적으로 비명의 합주를 크게 질렀습니다. 뭔가 깨지는 소리 정도는 자연적으로 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낯선 곳에, 어둠에, 무인역 온갖 공포스러운 것들이 집합한 이곳에서 그 소리가 난 건 과연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요?

 우연이든 필연이든 어찌 되었건 그 뭔가 깨지는 소리에, 겨우 쥐어 짜낸 제 용기는 죽고 말았습니다.

 “타, 탐색은 날이 밝은 뒤라도 괜찮으니... 미루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탐색해요...”

 “그러는 게... 좋겠어요... 하하...”

 저는 그대로 긴장이 풀려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저희는 역에 놓인 벤치에 앉았습니다. 저희 둘 모두 서로의 존재가 한순간이라도 사라지는 걸 느끼는 게 싫은지 저희 둘은 어깨를 딱 붙인 채 서로의 기척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옆에 누군가가 있다, 그 사실만이 유일한 마음의 버팀목인 겁니다.

 “언제나 사람이 많은 곳은 불편해서 싫어했는데... 인파가 그리워지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저는 언제나 사람이 많은 곳을 돌아다니니까 이렇게 인파가 없는 곳에 남겨진 게 어색하기만 해요. 파스파레 여러분... 포피파 여러분... 하구미 씨, 카논 씨, 츠구미 씨, 팬 여러분 전부, 전부, 전부 그리워요...!”

 “저도... 로젤리아의 모두가 그리워요...”

 평소에도 소중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상황은 제 무사도를 시험하는 순간일 것일까요. 너무나도 가혹합니다. 적어도... 제 생일을 축하하려고 이것저것 준비한 사람들의 마음만은 헛되이 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사히 살아 돌아가야겠죠. 린코 씨와 함께.

 점점 어둠은 짙어지고, 저녁은 밤이 되어갑니다.

 “별... 아름답네요...”

 “네... 무척 아름다운 광경이라 마음이 편안해져요...”

 밤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원활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포피파 여러분들이 왜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는지 무척 이해가 되네요...

 이곳에 오면서 심신이 지친 저와 린코 씨는 원활한 별빛 하늘 아래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다음에 깼을 때는 자신의 방 침대이길 바라는 마음을 품으며.

 

 ...뭔가 커다란 소리가 났습니다. 이대로 자기엔 떨쳐내기 힘든 큰 소음이...

 “...린코 씨?”

 저는 잠의 기운에서 조금씩 헤어나오는 과정에서 옆에 있어야 할 감촉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 옆에는 린코 씨가 계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두 눈을 뜨고 어찌 된 일인지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우선 눈앞에는 빛이 있었습니다. 밤인지 새벽인지 모를 시간대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 말입니다. 빛의 정체는... 전철이었습니다. 소음의 정체 역시 전철의 소리였습니다.

 “돌아가는 선로 쪽에 전철이?”

 아직 아침은 오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어둠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 시간대에 운영되는 전철이 있을까요. 그것도 이런 산 깊숙한 곳의 무인역에.

 “린코 씨...?”

 그리고 전철의 문 앞에는 린코 씨가 서 있었습니다. 그 문은 열려 있었으나, 안쪽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전철 안은 매우 환했기에 안쪽에 아무도 없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와카미야 씨... 빨리 오세요... 로젤리아의 모두가 절 데리러 온 모양이에요.”

 “로젤리아의 모두... 요? 아무도 계시지 않는데요?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린코 씨는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태는 이상했습니다. 안쪽에 Roselia의 모두가 있다니... 마치 뭔가에 홀린 사람 같았습니다.

 아아, 린코 씨가 전철 문을 향해 발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안 됩니다... 본능적으로, 상식적으로 저 전철은 타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 상황에 느낀 공포에, 얼어붙어버린 발을 필사적으로 움직이며 린코 씨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필사적인 감정이 담긴 허그였습니다.

 “아, 안 돼요! 린코 씨! 그곳엔 아무도 계시지 않아요! 린코 씨는 대체 뭘 보고 계시는 건가요!”

 “아무도 없다니 무슨 소리인가요, 후훗. 빨리 함께 연습하자며 기타를 꺼내드는 히카와 씨... 괜한 걱정하게 만들지 말라고 도도하게 말하는 유키나 씨... 미아가 된 절 위해 수제 쿠키를 가져온 리사 씨... 함께 광란의 연주를 하자며 드럼 위에서 절 기다리는 아코...”

 “대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예요! 이 시간에 누가 우릴 데려올 리가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전철에 드럼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정신 차려요! 제발!”

 만년 ‘보케’인 제가 일본 전통의 ‘츳코미’를 넣고 있다니 이건 정말 심각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제 안간힘은 무력했습니다. 린코 씨가... 이렇게 힘이 셌었던가요? 제가 아무리 힘을 주어도 린코 씨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저는 무력하게 끌려나갈 뿐이었습니다.

 “무사도 훈련을 위해 검을 휘두르며 단련하고 정진해온 제 근력이... 이렇게 허무하게...!”

 이미 린코 씨는 전철 안에 들어왔습니다. 아무리 당겨도 멈춰 세우는 것조차 못한 저입니다. 이젠 린코 씨를 이 전철에서 빼내는 건 무리겠죠.

 그렇다고 이 마계의 전철에 린코 씨를 혼자 둘 수 없습니다. 저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이 전철에 린코 씨와 함께 타기로... 뭐가 나오든 물리치기로. 죽도는... 큭, 서둘러 달려오느라 두고 왔지만 수도(手刀)로 수라장을 돌파하고 말겠습니다!

 저는 린코 씨를 따라 전철에 발을 들이고 몸을 앞으로 내밀어 전철에 타려고 했습니다. ...? 어라? 몸이 뭔가 무거워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이래선... 전철에 탈 수가... 안 됩니다... 린코 씨를 혼자 이 전철에 타게 둘 수는! 이것도 이 기묘한 전철의 수작인가요!

 “린코 씨... 함께 가요... 어디든... 함께... 환영이 아니라 진짜인... 저와 함께...”

 저는 필사적으로 제 몸을 누르는 압력에 저항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끝내 전 전철 안에 들어오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제가 타자마자 전철의 문은 닫혔습니다.

 “휴우... 린코 씨... 이 전철이 원래 장소까지 갈진 모르겠지만 어라?”

 저는 텅 빈 열차 칸 안의 상황에 어리둥절했습니다. 텅 빈... 그렇습니다. 저 외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린코 씨마저도.

 “어라...?”

 저는 뒤를 돌아 닫힌 문 너머의 풍경을 보았습니다. 문의 유리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말이죠. 그곳에는 사색이 된 린코 씨가 있었습니다. 린코 씨는 전철 문을 두들기며 뭐라, 뭐라 외치고 있었습니다.

 아, 이해했습니다. 이해하고 말았습니다. 전철에 홀린 건... 저였군요. 전철은 그렇게 출발했습니다. 제 영혼의 죽도도, 동반자도 전부 역에 둔 채로.

 필사적으로 문을 두들겨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별빛 하늘마저도 전철이 터널 안으로 들어가자 보이지 않게 됐습니다.

 

 

후기

 

분명히 이브와 린코의 인게임 대화로 시작된 스토리였을 텐데 왜 이런 스토리가 된 걸까. 시작하자마자 호러로 급선회하다가 수습할 수 없어 열린 결말로 내버리기, 전형적인 망작이네요.

 

차라리 초안이었던 ‘이브 짱! 일본 전통의 요바이 문화를 체험하다!’가 나았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