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우리 빵집 카운터? 모카가 있어. 중등부 시절 교복을 입은 모카가...

 “있지, 나 내 학교 친구들이랑 밴드를 결성했어. 이름은 CHiSPA.”

 “치즈빵?”

 “C.H.i.S.P.A! 모카 너 일부러 그런 거지?”

 이건... 나와 나츠키와 모두가 막 CHiSPA를 결성했을 때의 일인가.

 나는 야마부키 베이커리에 손님으로 온 모카에게 CHiSPA 결성 건을 이야기했다. 모카도 나도 잘 아는 소꿉친구들끼리 Afterglow란 밴드를 결성했었기에 공통 화제가 생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날의 대화는 온통 밴드 관련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장면이 넘어갔다.

 “사~야... 이제 더 이상 드럼은 안 치는 거야?”

 “응. CHiSPA에서 나왔고, 동료도 없이 혼자서는 드럼을 칠 이유가 없거든.”

 “왜? 그렇게 즐거운 표정으로 밴드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면서...”

 “어쩔 수 없어. 또 내 개인적인 이유로 동료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아.”

 모카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난 모카의 얼굴을 제대로 보면서 대화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그래도 모카의 표정은 알 것만 같다.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는 사라지고 침울해한 표정을 짓고 있었겠지.

 단골손님 관계를 넘어 밴드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밴드 친구가 됐으니 모카는 내가 드럼을 그만둔 것에 대해 많이 슬퍼했을 것이다.

 

 ...이른 아침. 나는 기상했다.

 오늘은 5월 19일. 나의 생일. 생일인데 꿈자리가 사나워 찝찝했다. 어째서 그런 꿈을 꿨을까.

 초등학생 때도,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는 손님, 자칭 미소녀 모카. 빵을 무척 좋아하는 그녀와 빵집 장녀인 나의 인연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크게 친한 친구 사이까지는 아니었었다. 어울리는 그룹이 달랐고, 학교도 달랐다. 실제로 모카에겐 나보다 훨씬 친한 친구 4인조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그녀와의 인연의 중심은 언제나 이 베이커리 안이었다. 그래도 나와 그녀는 누구에게도 무시하지 못할 인연을 그 안에서 쌓아왔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중학생 때부터는 그 미묘한 거리가 좁혀지게 됐다. 바로 밴드였다. 나도 모카도 우연한 계기로 각자의 밴드를 결성하여 밴드에 빠졌고, 밴드가 공통 화제가 되어 우리는 더 이상 베이커리에 묶인 사이가 아니게 되었다.

 그마저도 내가 밴드를 탈퇴하면서 거리감이 도로 옛날로 돌아갔지만. 모카도 눈치가 없는 아이가 아니었기에 내가 밴드 관련 화제는 불편할 것을 알고 밴드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나와 모카의 거리는 어정쩡한 채로 멈춰있을 줄 알았다. 고등학생이 됐을 때는 학교에 빼앗기는 시간이 많아지니, 학교가 다른 나와 모카의 연결고리는 점점 베이커리에 의존하는 게 심해졌다.

 베이커리에서 사소한 농담을 나누는 정도의 사이, 그게 나쁜 건 아니었을 것이다. 나도 나만의 그룹이 있고, 모카도 모카만의 그룹이 있다. 둘에겐 서로의 거리를 더 좁힐 만한 이유도 필요성도 딱히 없었다.

 그래도 서로가 밴드의 재미에 푹 빠져있었을 때, 커다란 공통 화제 안에서 신나게 떠들었을 때... 그때의 거리감에 대한 미련은 어쩔 수 없었다.

 뭐, 밴드를 다시 시작하고 예전의 모카와의 거리감을 되찾은 지금에 와서는 단순한 과거 이야기에 지나지 않지만.

 나는 하나사키가와 여학원의 교복을 입고 등교 준비를 했다. 내가 등교 준비를 마쳤을 때는, 사나와 준은 등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야 고등학교보다 시간이 널널할 테니 당연한 거겠지.

 베이커리의 아침은 이르다. 등굣길의 학생들을 유혹하기 위해서라도 일찍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침 댓바람부터 하네오카 여학원 교복을 입은 모카가 야마부키 베이커리에 찾아왔다. 등에는 밴드맨이란 걸 광고하듯 기타 케이스를 매고 있었다.

 평소 같은 빵 쇼핑이 목적일 수 있겠지만, 왠지 선물을 줄 거 같아 살짝 기대도 되는 방문이었다.

 그런 내 기대에 부응하듯 모카는 나에게 생일 축하한다며 선물을... 응?

 “이건 뭐야?”

 모카가 나에게 내민 건 명함 크기만한 카드였다. 한쪽 면에는 ‘모카 짱의 감성적인 포인트 카드’란 글귀가 쓰여있었고, 다른 면에는 동그라미 8개가 그려져 있었다. 동그라미 안에는 각기 다른 한자들이 쓰여있었다.

 “후훗, 모카 짱의 자작(自作) 포인트 카드. 사아야의 생일 선물로 츠구에게 부탁해서 만들어봤어.”

 어떡하지. 질문거리가 산더미다.

 “아니아니, 어떨 때 도장이 찍히는 거고, 도장 다 찍으면 뭐 주는 건데? 영문 모를 포인트 카드잖아.”

 게다가 츠구에게 부탁해서 만들었다면 모카의 자작인 것도 아니다.

 츠구... 이번에도 츠구했구나.

 “모카~ 너 내 생일 선물을 이렇게 대충 떼우려는 건 아니겠지?”

 모카를 대할 때 이게 힘들다. 장난인지 진심인지 구별이 안 된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비슷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드는데... 아.

 “아, 그러고 보니 모카 너 옛날에도 내 생일 선물이라고 색종이로 만든 포인트 카드를 줬었지. 공원 놀이터에서 모카의 가게 놀이에 어울릴 때마다 스티커를 증정해주는 방식이었지. 이것도 그 때랑 똑같은 거야?”

 “역시 사아야~ 내 친애하는 베이커리의 친우. 바로 꿰뚫어보시는구려~ 하지만 이번엔 놀이터에 차린 가게는 옛적에 접어서 없어~”

 그것은 초등학생 시절의 이야기. 어린 모카가 대뜸 포인트 카드를 내밀며 생일 선물을 받고 싶으면 모카가 놀이터에서 차린 모카 빵집에서 포인트를 받아가라고 미션을 주었다. 물론 빵집이라고 해봤자 어린애의 소꿉놀이, 진짜로 빵 같은 게 있지 않았고, 돌멩이를 빵이라 취급하여 사고파는 시늉을 하는 거였다.

 그나저나 이번엔 놀이터의 모카 빵집을 이용하는 게 아니다, 라. 당연하겠지. 이 나이에 소꿉놀이라니 아무리 모카라도 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어. 

 그럼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스탬프 칸을 채우는 걸까?

 포인트 카드는 가게를 이용했을 때마다 하나씩 채우는 것... 가게... 소꿉놀이 가게가 아니라면 진짜 가게를 말하는 거라면...

 그러고 보니 동그라미 속 한자, 北水尺와 羽水尺... 水尺의 水를 氵로 바꾸고 尺와 합쳐 沢로 읽으면 각각 北沢(키타자와), 羽沢(하자와)...

 혹시...?

 “이번에는 상점가의 가게가 포인트 카드의 도장을 찍어주는 곳인 건 아니겠지? 스탬프 랠리 같은 거 말이야. 동그라미 속 한자는 가게의 이름을 뜻하는 암호이고. 예를 들어 北水尺와 羽水尺는 키타자와와 하자와를 말하는 거지?”

 “뜨끔~ 너무해, 사아야~ 바로 맞춰버리면 준비한 사람이 뭐가 돼~ 모처럼 일일이 동의를 받아왔는데~”

 “하하, 너무 뻔히 보이는 말장난 암호잖아.”

 빙고다. 키타자와 정육점과 하자와 커피점은 확실하겠네.

 “그럼 난 이만 등교하러 갈게. 이건 빵값.”

 모카는 베이커리를 나갔다. 아, 물론 대화하는 중에 모카는 빵을 산더미만큼 사서 가방에 넣어놓은 상태였다.

 포인트 카드 이벤트 선물이라... 그때 꽤 재밌게 놀았었지.

 모카는 어릴 적부터 우리 빵집의 단골이었고, 포인트 카드를 모으는 걸 좋아해 나는 모카의 포인트 카드에 스탬프를 수도 없이 찍어봤다. 요컨대, 포인트 카드는 나와 모카의 진득한 인연의 상징이자 키워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키워드를 통해 받는 선물이라니 제법 기대가 되네.

 그러고 보니 예전의 포인트 카드 이벤트 때는 어떤 선물을 받았더라...

 나는 그날의 일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 생일, 초등학생인 나는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아야 짱, 생일 축하해.”

 “사아야 짱, 여기 고로케도 왕창 받으렴. 선물이란다.”

 집은 상점가 한가운데에 있었고, 상점가 사람들은 이웃이었기에 이웃집 딸내미인 나를 무척 귀여워하셨다.

 집으로 돌아오고는 여동생, 남동생인 사나와 준에게도 선물을 받았었지. 값싼 막과자에 불과했지만, 엄청 조그마한 동생이 선물을 줬다는 그 사실만으로 나는 기뻤다.

 “사~야!”

 그 때, 반가운 손님이 베이커리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금이랑 다를 바 없는 은발 숏컷에 항상 후드티를 즐겨 입는 소녀, 아오바 모카였다. 나와 같은 나이이지만, 초등학교는 달랐다.

 “자, 모카 짱의 생일 선물이야~”

 모카는 색종이를 오린 듯한 카드만 한 종이를 내밀었다. 밝은색을 띠는 면에는 삐뚤빼뚤한 동그라미가 8개 그려져 있었다.

 “포인트 카드?”

 “응. 모카 빵집을 이용하시면~ 스티커를 받을 수 있답니다~”

 포인트 카드라니, 포인트 카드 모으는 걸 좋아하는 모카다운 선물이었다.

 “그럼 경품을 받기 위해 열심히 모아야겠네. 모카의 빵집은 어디야? 안내해줘.”

 “안내할게~”

 참고로 모카 빵집은 진짜 빵집이 아니라 일종의 소꿉놀이다. 공원 놀이터의 모래사장에서 펼쳐지는 아이들의 환상. 어른의 일상을 동경하는 아이들의 놀이다.

 하늘에 새빨간 석양이 질 때까지 공원 놀이터에서 모카와 소꿉놀이를 즐긴 결과 포인트 카드의 스탬프(스티커)는 7개나 채워졌었다.

 그곳에는 모카랑 평소 어울려 지내는 란, 히마리, 토모에, 츠구도 있었지.

 “이용 감사합니다~ 이걸로 마지막 스탬프~”

 “응. 이걸로 완료야. 이제 기다리던 경품을 받을 수 있는 거지?”

 모카는 특유의 너구리 같은 웃음을 지으며 주머니를 뒤지던 중...

 “와~ 모두 모여있네!”

 주황색 숏컷의 하구미가 자전거를 몰면서 나타났다. 곰돌이 자수가 들어간 옷을 입었었던가. 자전거 바구니에는 흙투성이의 모래 놀이용 삽이나 양동이 같은 게 잔뜩 실려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하구미. 날이 저물도록 자전거를 몰고 있는 거 보니 또 멀리 있는 공원에서 새로 사귄 친구랑 놀았구나.”

 “응! 이번엔 모래 놀이를 했어! 모래로 잔뜩, 잔뜩 고로케를 만들어서 팔았어!”

 하구미는 그때도 고로케에 사족을 못 썼지. 뭐, 모카랑 똑같으려나. 오히려 어릴 때와 달라진 아이를 못 본 거 같아...

 “사~야~ 자, 이게 모카 빵집의 포인트 카드 경품입니다요~”

 모카는 포장지로 포장된 선물을 나에게 줬다. 크기는 작았다.

 “와~ 안에 든 건 뭐야?”

 “그건 개봉했을 때의 재미로 남겨둬~”

 참고로 안에 든 건 헤어 엑세서리였다. 내 상징에 걸맞은 빵 모양의 헤어 엑세서리.

 “와! 모카 빵집 경품이라니 하구미도 받고 싶어!”

 “하구미 생일 때도 만들어볼까~”

 “하구미는 경품으로 고로케를 받고 싶어!”

 “하구도 참, 하구에겐 고로케는 경품거리가 안 되잖아.”

 하구미의 실없는 소리의 엉뚱함을 히마리가 똑바로 지적했다.

 “그건 그렇지. 하하!”

 히마리의 지적에 토모에가 편승하듯 크게 웃고.

 “하구미 짱, 생일이니까 평소에 볼 수 없는 특별한 걸 고르는 게 좋지 않을까?”

 츠구는 성실하게 하구미에게 히마리가 지적하고 토모에가 웃는 이유를 설명하여 다른 방안을 내놓고.

 “꼭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도 생일 때 꽃을 받으면 기쁜걸...”

 란은 조심스럽게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대화는 그렇게 생일 선물에 관한 토론으로 번졌다. 아이들답게 주장하는 논리는 보잘 거 없었지만, 아이들은 나름 진지하게 자신의 말을 던지고 부딪쳤다.

 

 ...개성 넘치는 모두가 왁자지껄 떠들던 그 날의 생일. 오랜만에 기억 속에서 들춰내어 추억에 잠기니 정말 행복한 초등학생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정말 즐거운 나날이었지. 비록 Afterglow의 모두하고는 그룹도 학교도 달라 절친 수준의 관계까지 가진 못했지만, 그래도 함께 있으면 즐거웠어.

 그렇게 내 회상은 종료됐다. 추억의 감미로움의 여운을 느끼면서.

 나는 그대로 하나사키가와 여학원으로 등교했다. 학교에선 당연히 친구들이 줄지어 나에게 생일 축하의 말들을 보내왔다. 그 중에선 선물도 주는 친구도 있었다.

 “사~야, 생일 축하해! 앞으로도 의지할게~♪”

 “나야말로 카스미의 저돌적인 활동력과 밝은 미소에 의지하고 있어.”

 우리 밴드 Poppin'Party의 하나뿐인 리더이자 밴드의 중심인 기타 보컬인 토야마 카스미. 오늘도 활기차서 보기 좋네. 카스미의 기운 잘 받아갈게.

 “사아야의 생일 선물은 좋아하는 토끼와 투샷 촬영권!”

 “정말이지, 오타에의 토끼 사랑은 참 못 말린다니까.”

 우리 밴드의 기타 담당 하나조노 타에. 만약 가장 좋아하는 토끼는 오타에 너라고 대답한다면 오타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아야 짱, 생일 축하해. 헤어 액세서리, 받아 줄래?”

 “응. 리미링의 엑세서리 센스는 기대하고 있어.”

 우리 밴드의 베이스 담당 우시고메 리미. 리미링, 언제나 우리 집 초코 소라빵을 사랑해줘서 고마워.

 “생일 축하해, 사아야. 저기...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나도 잘 부탁해. 아리사.”

 우리 밴드의 키보드 담당 이치가야 아리사. 낯간지러움에 매우 약해 새빨개진 얼굴을 이렇게 보고 있자니 오히려 내가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물론 본인에겐 말 못 하지만.

 “오늘은 사~야의 생일. 선물은 접이식 우산이에요!”

 와카미야 이브. 모델 출신의 아이돌인 친구. 의외로 멀쩡한 걸 선물해줘서 안심이다.

 “생일 축하해, 사아야. 앞으로도 멋진 드럼 테크닉을 보여줘.”

 그리고 나츠키...

 나츠키. 우미노 나츠키.

 중등부 시절 함께 CHiSPA란 밴드를 만들어 함께한 동료.

 나의 혼자 끌어안는 못된 성격 때문에 밴드 멤버들과 갈등을 빚다가 결국 나는 그곳을 나와버렸다.

 막 고등학생이 됐던 시기만 해도 넘쳐흐르는 미련에 마음 아파했었고 나츠키를 포함한 옛 동료하고도 사이가 어색해져 대화도 나누지 못했었지만, 무사히 상처를 내딛고 Poppin'Party에 들어온 뒤로는 그런 일은 없어졌다.

 “응. 나츠키의 CHiSPA의 멋진 공연도 기대하고 있을게!”

 정말 Poppin'Party에게, Poppin'Party의 모두에게 얼마나 감사를 해야 할지. 만약 내가 CHiSPA 탈퇴에 대한 응어리를 언제까지고 끌어안고 있었다면 이렇게 나츠키와 어색함 없이 축하의 말을 나누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말 다행이야. 나, 사아야하고 다시는 이렇게 친구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했거든. 사아야는 날 보면 죄책감부터 느껴 거리를 뒀었으니까. 생일 축하의 말조차 속시원하게 말할 수 없었지.”

 “나츠키...”

 “나도 뭔가 이야기하려고 해도 무심코 밴드에 관한 화제를 말할까 봐 두려웠어. 말하는 순간 우리 둘 사이에 또 엄청 서먹한 분위기가 흐를 거 같았거든. 정말 Poppin'Party에겐 감사하고 있어. 지금은 막혔던 피가 뚫려 전신에 흐르는 듯한 기분이야.”

 나츠키도 아주 괴로웠었겠지. 응. 정말 모든 게 다행인 거야. 너의 마음속에서 나에 관한 응어리가 사라진 게 난 기뻐.

 그리고...

 난 치마 주머니 속의 모카의 포인트 카드를 의식했다. 그리고 그 시절에 괴로웠던 건 나츠키만이 아닐 것이다. CHiSPA뿐만이 아닐 것이다.

 베이커리에서 밴드 화제로 대화의 꽃을 피우던 한 ‘소녀’ 역시 괴로웠을 것이다.

 문뜩 떠올랐다. 난 나츠키에게, CHiSPA의 모두에게 사과한 적은 있어도 그 ‘소녀’에겐 사과한 기억이 없다는 걸.

 어쩌면 오늘 꾼 꿈의 의미는...

 

 방과 후, 나는 모카에게 전화했다. 상점가를 돌고 돌아 스탬프 8개를 다 모았지만 정작 스탬프를 다 모은 포인트 카드 가지고 그 뒤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벤트 진행 담당인 모카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정말 모카답게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이벤트 진행이다.

 “나, 초절정 미소녀 모카 짱이야~ 지금 네 집에 있어~”

 “우리 집에서 메리씨 놀이하지 말아줄래? 알았어, 내 집으로 가면 되는 거지?”

 나는 모카 말대로 우리 빵집으로 돌아와 봤다. 내 방으로 들어가니 모카는 그곳에서 빵을 우물우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침때랑 똑같이 등에는 기타 케이스를 맨 채.

 “여기 스탬프 전부 찍어왔어.”

 “아아하이아 오이 이헤 여후으 으리에으이아(감사합니다 손님 이제 경품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빵 먹어줘서 고마운데, 말은 다 먹고 말하자. 그러다 체해.”

 모카는 편의점에서 사온 듯한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며 제빨리 입 안의 빵들을 식도 너머로 내보냈다.

 “있지, 모카. 내가 드럼에서 손을 놓았던 거 기억하지?”

 “응~ 그건 왜?”

 “미안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 당시에 모카 날 신경 써줘서 밴드 화젯거리를 입에 담지 않았잖아. 모카에겐 계속 참게 해서 미안했고, 그리고 모카의 다정함엔 고마웠어.”

 Poppin'Party로서 멋지게 드러머 복귀를 했을 때 당연히 모카에게도 나의 복귀를 바로 알렸었다. 그러나 그때는 단순히 이야기한 거로 그쳤다. 방금 내가 한 말은 그때 했어야 했는데...

 당시의 난 나의 복귀를 반갑게 맞이하는 듯이, 기쁘게 웃어주는 모카의 미소에 마음을 놓아 중요한 걸 잊어버렸다.

 나츠키가 그랬듯 밴드맨인 이상 밴드에 관한 화젯거리를 입에 담지 않는 건 고됐을 것이다. 특히 전에는 즐겁게 밴드 관련 화제로 대화의 꽃을 피웠던 상대인 만큼 더욱. 모카는 그 당시 쭉 참아줬던 것이다. 입으로 독을 뱉는 일이 없도록.

 “이 포인트 카드가 계기가 되어 모카와의 지난 일들을 많이 떠올렸거든. 인제야 모카가 엄청 다정했다는 걸 깨닫게 됐어.”

 어릴 적부터 그룹이 다르고, 학교도 달랐지만 모카는 멋진 친구다. 새삼스럽게 그걸 다시 깨달았다. 분명 Afterglow의 모두는 나 이상으로 그걸 알고 있겠지.

 “후후~ 낯간지러운 말은 오늘 모카가 해야 할 말 아니야? 뭐~ 아무튼 더욱 고마워하라고~”

 모카는 의기양양한 포커페이스로 내 낯간지러운 말을 부드럽게 받아넘겼다. 모카답다. 란이었다면 아리사처럼 얼굴이 붉어지는 마법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자자~ 지금부터 미소녀 모카 짱의 포인트 카드에 대한 경품을 수여합니다~ 경품은 모카가 사~야의 생일을 위해 작곡한 기타 솔로곡입니다~”

 모카는 기타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 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선물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기타 연주뿐인 그 곡은, 가사가 없기에 오로지 귀로 듣는 멜로디를 통해 노래를 은유해야 했다.

 경쾌하게 시작을 끊은 곡은 더욱 경쾌해져 가더니 갑자기 줄이 뚝 끊긴 듯한 멜로디와 함께 변하기 시작한다. 경쾌함은 여전하지만, 어딘가 날개 하나가 꺾인 듯이 불안정한 멜로디... 그런 불안정한 경쾌함은 어느 정도 이어지다가...

 “STAR BEAT...”

 엄청 익숙한... 익숙하지 않을 리 없는 멜로디가 튀어나오며 다시 처음의 경쾌함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총 5분간의 솔로곡의 연주가 끝났다. 나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나의 인생을 은유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카가 본 나의 인생을 은유하고 있었다.

 정말 나를 위한 곡이다. 모카는 나를 위해 이걸 준비했었구나.

 모카는 연주가 끝나자 심호흡을 한 번 하듯이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모카는 슬펐어. 모처럼 사~야와 공통된 화제가 생겨 빵을 살 때가 2배로 더 기대됐었단 말이야. 미안하단 말도 모카가 할 말이야. 당시 모카는 아무것도 못 했어.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사~야가 그냥 지금으로 만족하는 거 같아서 곁에 가만히 있기만 했어.

 사~야가 Poppin'Party의 드러머로 복귀했을 때 생각했어. 어째서 카스미보다, 오타에보다, 리미링보다, 아리사보다 더 사~야를 봐온 모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걸까, 하고.”

 “모카...”

 역시 모카도 나츠키처럼 내가 밴드를 탈퇴하고 드럼을 접은 것에 많이 신경 쓰고 있었구나.

 그 모든 불안을 느긋한 포커페이스 뒤에 숨긴 채.

 “당시 사~야는 혼자 끌어안으려고 하다가 그렇게 된 거지? 모카는 그렇게 혼자 끌어안으려고 하다가 친구 관계를 망칠 뻔한 바보 한 명을 알아. 그때도 모카는 그저 곁에 있기만 했어. 그저 곁에 있기만 하다가... 전부 망칠 뻔했어.”

 혼자 끌어안으려고 하다가, 라. 란의 이야기구나. 아버지와의 갈등을 혼자 끌어안다가 친구 관계가 소원해져 버렸다고 했던 그 이야기. 이미 원만하게 해결된 이야기라 Afterglow 모두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착한 선배가 조언해주지 않았다면 모카는 친구를 위해 친구랑 싸우지도 못했을 거고, 친구라면 친구를 위해 싸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계속 몰랐을 거야. 만약 진작 알았다면 모카가 빨리 사~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싸움. 그래, 카스미가 나를 드러머로 복귀시킬 때도 나 카스미랑 대판 싸웠었지. 확실히 그때 카스미가 나를 위한 최선이라고 곁에서 지켜보기를 선택했다면 나는 계속 멈춰있었을 거야.

 “하지만 이제 전부 좋게 끝난 거야~ 사~야가 더 이상 혼자 끌어안는 건 좋은 게 아니란 걸 알았듯~ 나도 친구를 위해 싸움을 각오하고 솔직한 감정을 드러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앞으로 반성을 헛되게 하지 않는 게 중요하지~”

 “응. 맞아. 아, 그리고...”

 나는 그만 잊고 만 말이 떠올랐다. 모카에게 반드시 해야 할 말을 말이다.

 “나를 위한 기타 솔로곡, 훌륭했어.”

 “에헴~ 모카 짱의 초절정 기타 테크닉은 허세가 아니니까 당연하지~”

 고마워, 모카.



후기


사아야 모카 소설 처음에는 분량 안 나와서 고생했는데, '사아야의 중등부 시절을 알고 있었을 모카' 소재 떠올리니 단번에 분량이 벌크 업...


사아야 모카는 진리입니다. ...라고 하기엔 다른 커플링이 막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