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이제 베이스가 필요하겠네…. 음?”
토우코와 츠쿠시, 그리고 마시로는 밴드에 대해 상의하는 중이었다.
토우코는 기타, 츠쿠시는 드럼, 마시로는 보컬.
각각 이런 파트로 정해졌다.
“왜 그래?”
“기분 탓인가…? 왠지 누가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와앗! 저기 수풀 사이에서 엄청 보고 있어!”
“누, 누구야? 저런 데서 뭐 하는 거야?”
“어라? 쟤는….”
토우코가 그 학생을 자세히 살펴봤다.
“어이~! 뭐 하는 거야, 히로마치!”
“헉! 들켰네!”
“응? 토우코 짱 친구야?”
마시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같은 반의 <히로마치 나나미>.”
히로마치 나나미.
투 사이드 업의 헤어스타일과 핑크 블론드 머리카락, 그리고 분홍색 동공과 고양이 입.
못 하는 게 없는 재능충이지만 평범한 걸 원해서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는 소녀.
“고등학생 되고 나서 사귄 친구지만.”
나나미가 수풀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 미안~! 왠지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아서 봤어.”
“뭐야~ 무섭다고! 토우코 짱의 친구라면 말 걸어줘도 되는데!”
“아니. 그렇게 진지하게 가위바위보를 하면 방해할 수 없잖아.”
나나미를 제외한 세 사람은 밴드에서 각자 어떤 악기를 할 것인가에 대해 가위바위보로 결정하고 있었었다.
“진지했던 건 한 사람뿐이었지만….”
“아하하….”
츠쿠시와 마시로가 토우코를 슬쩍 바라보았다.
범인(?)은 토우코라는 뜻.
“그래서 무슨 이야기 중이었어?”
“밴드 이야기! 사실, 이 두 사람과 밴드를 결성했거든!”
토우코가 자랑스러운 듯 가슴을 쫙 폈다.
“전에 라이브 보러 갔더니… 나도 한번 해보고 싶어져서 말이야~!”
“오~ 그러고 보니 토~코 짱. SNS에 라이브 갔던 거 올렸었지….”
“아, 맞아~! 오늘 끝나고 악기점 들리지 않을래? 파트도 정해졌으니 악기 보러 가고 싶어!”
“나도 보고 싶어! 멋진 드럼이 있으면 좋겠다~!”
토우코와 츠쿠시가 기타와 드럼을 상상했다.
“종례가 끝나면 교문에서 만나기로 하자.”
마시로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오케이~ 그러면 악기 보고 나서 무지개 한 잔!”
“무, 무지개?”
무지개를 마신다니?
대체 무슨 개소리인가.
“그게 뭐야?”
“엥. 몰라? 무지개색의 엄청 컬러풀한 스무디야! 얼마 전부터 역 앞 카페에서 팔고 있는데 지금 내 안에서 붐이 왔다니까!”
“무, 무지개색 스무디…? 으음, 뭐가 들어있어?”
중요한 건 성분.
발암 물질이 들어있을지 모른다.
“글쎄, 몰라. 그런데 맛은 밀크티 같았어.”
“무서워! 어째서 무지개색인데 밀크티 맛이야!?”
츠쿠시가 경악했다.
“글쎄? 그래도 분명 빠져들 테니까, 두 사람도 마셔 봐! 나는 무지개 붐이 조만간 올 것 같아~”
“오, 올까?”
비주얼이 무지개라서 사람들이 꺼릴 것 같은데.
“그런 수상한 음료는 유행하지 않을 것 같아….”
그녀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동안.
“….”
“…아, 미안해 히로마치 씨!”
나나미가 자연스럽게 소외됐다.
분명 기분 나쁘겠지?
“우리끼리 얘기해서.”
도리도리.
“아니야, 신경 쓰지 마.”
나나미가 부러운 듯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부럽다~ 왠지 즐거워 보여.”
“그럼 히로마치도 같이 밴드 할래? 지금 절찬리에 멤버 모집 중!”
멤버 모집 중이 아닌 상영 중인데.
“앗, 그래도 돼?”
“물론이야! 베이스 맡아 줄 사람을 찾고 있는데 히로마치 씨는 악기 다뤄본 적 있어?”
“아니, 전혀. 그래도 괜찮다면 베이스 할게! 재밌겠다!”
악기를 다뤄본 적 없는데 베이스를 치겠다니.
아마 이건 나나미밖에 할 수 없으리라.
“고마워 히로마치 씨…!”
마시로가 눈물을 머금으며 나나미의 손을 잡았다.
“아냐. 사실 밴드는 조금 흥미가 있거든~ 왠지 ‘평범’하다는 느낌이라 좋아 보였달까.”
“평범…!?”
세 명이 경악했다.
“앗, 그게~ 아하하… 내 이야기! 모두 앞으로 잘 부탁해!”
어쨌든, 베이스가 영입됐다.
* * *
하굣길.
“쿠라타 씨.”
“응?”
츠쿠시와 마시로는 하굣길이 우연히 같아서 같이 하교하고 있었다.
“쿠라타 씨는 이쪽 길로 가는 거야?”
“응.”
“그럼 어쩔 수 없네. 여기서 헤어지자~!”
츠쿠시가 다른 골목으로 갔다.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다음에서야 자신도 발걸음을 옮겼다.
“으음….”
침음을 흘리는 마시로.
‘역시 나 같은 게 보컬은… 될 수 없을 것 같아.’
갑자기 자괴감이 느껴졌다.
그야 츠쿠시가 노래를 불러달라고 해서 불렀는데 너무 음치였으니까.
‘불안정한 음색, 불안정한 음정, 불안정한 음감….’
연습으로 어떻게든 커버된다고 들었지만 빡세게 한다고 해도 잘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
차라리 모든 걸 잘하는 나나미에게 서로 역할을 바꾸자고 말하자니 왠지 모르게 찔렸다.
“으으… 후타바 씨에게 말해야겠다!”
연습을 제외한, 어떻게 하면 노래를 잘 부르는 방법에 대해서.
그래서 다시 츠쿠시가 간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렇게 해선 안 됐었다.
“사탄의 힘은 최고인 것 같다. 망할 신의 감시를 안 받고 마음껏 죽일 수 있으니까.
“후, 후타바 씨…?”
쿵.
심장이 내려앉았다.
“어? 안녕, 쿠라타 씨!”
목이 기괴하게 꺾인 츠쿠시의 ‘시체’가 공허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앞에 있는 츠쿠시는 대체 누구인가.
“근데 왜 이쪽으로 온 거야? 그럼 뒤처리가 꽤 골치 아파지잖아.”
“아, 아아….”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사람이 죽었다.
츠쿠시, 아니면 츠쿠시인 척하는 작자에 의해.
“…우웁!”
헛구역질을 했다.
“너무 리얼한가? 뭐 어때, 벨제부브의 변신술은 만능에 가까우니까. …그 클리파를 누구에게도 주기 아까울 정도로.”
츠쿠시가 이상한 소리를 지껄였다.
“어쨌든 너와 만나는 건 나중으로 할 계획이었는데….”
츠쿠시의 몸이 뒤틀리며.
“…!”
“벌써 만나면 지루하잖아. 더 성장하고 왔어야지.”
한 남성, 나이트메어로 바뀌었다.
“죽일까요? 저런 식으로 떨고 있으면 역겨워서 못 봐주겠어서요.”
가면을 쓴 여인, 벨페고르가 손을 들어 올리자.
“으, 으어….”
그림판으로 대충 그린 것 같은, 누가 봐도 정말 우스꽝스러운 생명체가 나타났다.
“아오오!!”
하지만 그가 울부짖은 순간부터, 우스꽝스럽지 않은 생명체로 변모했다.
-휘우우!
칼바람이 마시로의 생명을 끊기 위해 날아가던 그때.
“건들면 안 돼! 인스탄티아!”
나이트메어가 릴리스의 힘으로 칼바람의 궤도를 강제로 꺾었다.
-캉가강!
애먼 건물들의 외벽만 작살났다.
“…윽. 죄송합니다.”
“괜찮아. 안 죽였으면 됐어.”
그가 벨페고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츠쿠시에게 다가갔다.
“시체는 네가 처리하고, 난 후타바 일가를 몰살하러 갈게. 츠쿠시의 얼굴로 하면 재밌겠지?”
“…!”
마시로가 주저앉았다.
츠쿠시가 죽은 걸로 모자라 여러 충격을 받아서 그런 거겠지.
“아 맞다. 루키푸구스, 나와.”
“Why call me?”
불쑥.
마시로의 뒤에서 루키푸구스가 나타났다.
“…?”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스모데우스는 그 dog girl과 아주 잘 싸우고 있으니 don’t worry. 그럼 bye~”
루키푸구스의 몸이 땅속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그거 말하려는 거 아니고.”
“…?”
나이트메어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얘의 기억, 우리를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을 봉인해.”
“Okay. 그 정도는 not difficult.”
“다 하면 자리를 옮길 거니 벨페고르, 네 사역마 대기시켜둬.”
“네.”
“크흠. 언젠간 다시 만나자!”
“Well… 계속해도 돼?”
“그래. 시간 뺏어서 미안하다.”
루키푸구스가 자신의 머리에 손을 얹자.
‘뭐, 뭐지?’
시야가 암전됐다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여긴….”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지?”
* * *
“그러니까, 후타바를 다시 쫓아가려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처음 보는 골목이었다?”
마시로는 다음 날, 학교에서 어제 자신이 겪었던 일을 설명했다.
뭐, 다들 믿지 않는 것 같지만.
“하하하! 쿠라타, 무의식중에 마법을 썼어? 그럼 겁나 굉장한데!? 어디서 배웠어? 호그와트?”
토우코가 폭소하며 마시로에게 질문 공세를 이어 나갔다.
“그, 그게….”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시로.
“마법이라…. 히로마치의 사전에 따르면 마법을 쓰는 사람은 NASA에 잡혀가서 해부 당한대~”
무슨 외계인도 아니고.
“히이익…!!”
“정말, 두 사람 다! 쿠라타 씨가 당황하고 있잖아!”
츠쿠시(나이트메어가 변신함)가 쉴드를 쳤다.
“으음… 확실히, 마법은 너무 갔어. 그럼 몽유병이라도 있는 거야?”
“여태 그런 적 없었으니 아닐 거야. …근데 정원에 누가 있어. 이제 하교 시간이지?”
정원을 가리켰다.
검은색 숏컷, 고등학생이라곤 전혀 상상도 못할 만큼의 성숙한 모습의 여학생이 정원에 있었다.
“저건… 야시오 루이?”
“야시오, 루이?”
“수려한 용모, 학업 우수, 스포츠 만능, 거기다가 중학생 때부터 학생회 멤버였지.”
“게다가 내 친위대로 만들고 싶기도 하고….”
“응? 후타바 씨? 뭔가 말했어?”
“어… 만능이어서 굉장하다고.”
“조금 다가가기 힘든 느낌이긴 하지~”
“쟤는 꽤 친해지기 힘들다니까~”
천하의 토우코가 그럴 정도면 대체 얼마나 철벽이란 말인가.
“…너희.”
정원에 있던 루이가 다가왔다.
“응?”
마시로와 토우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연주한 건 너희?”
“그런데…?”
토우코가 조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키리가야 씨? 그래, 네가 관련돼 있다면 납득이 돼.”
“뭐? 뭔 소리야?”
“소란스러운 자리엔 항상 네가 있으니까. 최근에 소음이 들린다고 학생회에 고충이 들어왔어.”
“소, 소음…?!”
토우코와 나나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밴드 연습 소리…?”
“밴드 연습? 그게 노래였니?”
루이가 의외인 듯 눈을 동그랗게(그래도 별 차이 없지만, 충격받았다는 뜻) 떴다.
“음악은 조화야. 교실에 들린 소리는 조화롭다곤 할 수 없어.”
그녀들의 밴드 연습 장소는 빈 교실이었다.
그것도 츠쿠시의 평화적인 방법으로(아스타로트의 힘을 써서) 학생회로부터 사용 허가를 받은 교실.
“아, 아직 연습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토우코가 뭐라고 말해보려는 듯 반론했다.
“언제부터 시작했든 지금 여기 있는 것이 전부야.”
정론폭격기(正論爆擊機).
그녀에게 어울릴 것 같은 이명이었다.
“교실에서 들려오는 건 음악이라고 할 수 없는 소음. 피해를 주는 건 학생회 일원으로서 인정할 수 없어.”
“교실 사용 허가는 학생회에서 제대로 받았는데?”
“그렇다는 건, 이 신청서를 적은 게 너희구나.”
루이가 신청서를 확인했다.
“…완벽해. 오탈자도 없고, 가독성도 뛰어나.”
“그, 그럼…!”
토우코가 희망의 줄을 발견한 듯 그걸 잡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무튼 교실 사용 허가는 취소야. 돌아가기 전에 교실에 있는 짐들 정리해.”
루이 앞에선 그딴 짓은 소용없었다.
“뭐어!?”
마시로와 나나미가 경악하고.
“자, 잠깐만!”
토우코가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 루이의 손목을 잡았다.
“얘기는 여기까지야. 너희와 의논할 이유는 없어.”
루이가 토우코의 손을 뿌리치고 제 갈 길을 갔다.
* * *
“미친놈.”
알파는 이빨을 꽉 깨물었다.
“개새끼.”
-쿵!
팔걸이를 내리쳤다.
“천국도 지옥도 모자란 새끼.”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그럴 만도 한 게, 나이트메어가 후타바 일가를 몰살했으니까.
‘아카식 레코드에서 그놈이 한 짓은 알았지만… 막상 다시 보니 빡치네.’
하물며 츠쿠시의 모습으로 그들을 몰살했다니.
만약 만악의 근원이라는 개념이 있다면 틀림없이 나이트메어를 지칭하는 말일 테지.
‘츠쿠시를 믿고 따르는 동생들이 있다고.’
그런 언니가 갑자기 자기들을 살해한다면 대체 어떤 기분일까.
‘하하. 감히 애들을 죽여?’
알파도 아이는 안 건드린다.
건드려야 할 상황에선 죽이지 않고 가벼운 훈계로 끝나지.
‘넌 진짜 안 되겠다.’
그냥 나이트메어를 곱게 죽일 생각이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죄질이 커도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뼈를 갈아서라도 죽여줄게. 나이트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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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나이트메어 죄명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