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느 날의 경치를 떠올립니다. 

 앨범을 펼치듯 기억의 페이지를 열어, 제가 살아온 지난날의 광경을 눈꺼풀 뒤에 그립니다.


 모든 것이 하얗게 타버리기 전의 테라의 경치를. 




 테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분진으로 인해 혼탁해진 하늘일 것입니다. 


 테라의 각지에서 발생하는 재앙은, 대지에 내려앉는 파괴의 소용돌이의 전조로서, 대지로부터 대량의 활성 오리지늄을 대기로 확산시킵니다. 저희들이 올려다보는 하늘의 대부분은, 활성 오리지늄 분진을 잔뜩 품고 있는 황금색의 뿌연 구름으로 덮여있습니다.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짙은 갈색 구름. 때때로, 활성 오리지늄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하늘을 가를 듯할 정도의 엄청난 번개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재앙의 초고밀도 에너지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듯 형성되는 대량의 활성 오리지늄을 머금은 구름은, 몇 만 미터 아래에 있는 우리들의 몸을 떨리게 할 정도로, 크디큰 소리를 울립니다. 쿠궁, 쿠궁, 수만 마리 동물들이 일제히 울부짖는 듯한, 파괴의 전조 소리를. 




 다음으로 사람들이 떠올릴 테라의 경치는, 그런 재앙이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 뒤에 남는, 끝없이 이어지는 황야일 것입니다. 


 모든 것이 뜯겨나간 대지에는 재앙이 내려찍은 분노의 철퇴가 박혀있곤 합니다. 


 도시 하나의 건축물을 전부 합친다고 해도 부족할 만큼 거대한 오리지늄 결정이, 지평선 너머까지 수없이 늘어서서 대지를 유린하고 있습니다. 언제봐도 이 광경은, 테라라는 세계 그 자체가 품고 있는 헤아릴 수 없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게 하여, 저에게 경탄과 공포를 안겨줍니다. 




 하지만, 물론, 테라에는 그런 가혹한 광경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동도시. 수백만 명의 생명과 문명을 짊어지고 황야를 달리는, 인류의 지혜와 생존본능의 결정체. 처음으로 그것의 전체 모습을 보고, 그것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실감을 얻었을 때의,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오르는 것 같은 고양감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양한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비교적 재앙에서 안전한 지역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파른 영봉을 주신으로 여기는 설국 쉐라그. 물과 숲으로 가득한, 강인함을 자랑하는 티아카우인이 사는 열대우림 아카후알라. 모두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클리프하트 씨나 가비알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고향 이야기는 너무나도 가슴을 뛰게 하여 설렘을 금치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제가 직접 보았던 광경도 많이 있습니다. 다들 함께 갔던 도솔레스의 바다는 너무나도 예쁘고, 시끌벅적하고, 너무나도 즐거운 곳이었습니다. 호시구마 씨 일행에게 권유받은 카지노는 무서워서 가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무서워도 모두 함께니까 괜찮았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눈으로 보았던 기억 속 광경. 누군가에게 들은 추억 속 광경. 


 이것도 저것도 모두 보석처럼 눈부신 색으로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세계가 잔혹함으로만 가득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지를 위협하는 재앙, 사람을 좀먹는 오리지늄의 격통, 가난, 굶주림, 전쟁은, 어디까지나 이 세계를 구성하는 일부에 불과하고, 그런 어둠에 지지 않는 수많은 눈부신 광경들도, 이 대지에 펼쳐져있는 것입니다. 




 저는 세계의 빛을 알고 있습니다. 이 가혹한 세계에도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 수 있었던 저의 삶은 틀리지 않았다고 강하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새하얗게 닫힌 세계에서도, 기억의 앨범의 페이지를 넘기며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작은 이동도시 안에 있습니다. 


 이곳은 제약기업 로도스 아일랜드. 광석병에 걸린 사람들을 돕는 기업이동도시는, 오늘도 도움을 요청하는 도시를 향해 오리지늄 결정이 늘어선 황야를 달리고 있습니다. 


 리유니온과의 싸움을 시작으로 수많은 사건과 싸움을 거쳐오기를 몇 년. 


 신뢰성 높은 의료 기술과 우수한 외교 전략, 기업 단독으로 폭도 진압을 해내는 전투력이 평가되어, 로도스는 비약적으로 그 지명도를 늘리며 사업 규모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용문과 카시미어를 비롯한 협력 도시에는 거대한 로도스 지사 빌딩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로도스가 직접 운영하는 크고 작은 의료시설들이 각지의 광석병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기도 합니다. 


 로도스는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수많은 의료 스탭과 오퍼레이터들이 세계 각지에서 조사와 연구를 하며, 지금까지 해온 것 이상으로 많은 광석병 환자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약적인 성장은, 한 가지 문제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광석병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의료기관 로도스가 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공포의 대상 중 하나. 






 ――광석병 환자의, 사망 시 처리입니다. 






 광석병 환자의 체내 오리지늄은, 숙주의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활성화되어, 강한 감염력을 가진 분진을 만들어냅니다. 동시에 시간이 흐르며 비대해진 오리지늄 에너지는 숙주의 죽음과 함께 최대화되어, 육체 그 자체를 오리지늄화시켜 생성된 분진을 대량으로 흩뿌립니다. 


 그것이 광석병 환자의 말로. 테라에 사는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감염자가 박해받는 가장 큰 이유. 


 이동도시 로도스 아일랜드는 대량의 감염자를 받아들인 결과,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대량의 오리지늄 폭탄을 안게 된 것입니다. 




 광석병은 불치병입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고, 무서운 속도로 찾아옵니다. 


 흩뿌려지는 활성 오리지늄은 적절한 처리를 하지 않으면 새로운 감염자를 만드는 것은 물론, 기존 감염자의 병세를 더욱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간혹 하루에도 수십 명까지 발생하는 감염자의 사망에 안전하게 대비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사항입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로도스는 또 하나의 이동도시를 만들었습니다. 


 로도스 본함으로부터 약 5킬로미터 거리를 두고 따라가는 시설급 사이즈의 소형 이동도시. 


 그 이름은 로도스 터미널. 


 감염자 중에서도 죽음을 눈앞에 둔 자만을 수용하는, 로도스의 종말기 병동. 


 로도스가 받은 환자가 마지막에 도달하게 되는 공동묘지. 


 나의 최후를 맞이할 장소. 






 저는 로도스의 전 오퍼레이터, 에이야퍄들라. 


 이 로도스 터미널이라는 이름의 움직이는 관에서,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로도스에게 광석병 치유와 재앙 연구 협력을 요청받은 뒤로 무려 5년 정도가 지났습니다.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저는 이미 중환자였고, 상당한 난청과 가벼운 감각이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를 진찰하신 선생님은 진단 결과를 보자마자 표정이 흐려졌습니다. 그분은 저를 안심시키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로도스의 광석병 연구수준은 테라 제일이니까, 네가 완치되는 날이 올 지도 몰라.' 라며 격려해주셨습니다. 


 완치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네요― 그렇게 대답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다지만, 역시 그건 이뤄질 수 없는 소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광석병은 어차피 마지막으로 목숨을 가져갈 거면서도, 그 전부터 저의 수많은 것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특히나 절망적이라고 들었던 청력은,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정확히 켈시 선생님이 예상하신 날짜에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고받았던 마지막의 전날, 저는 담당이었던 수수로 선생님이나 친하게 지냈던 오퍼레이터 분들과, 많은, 아주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안젤리나 씨는 저를 끌어안아주며, 많이 망가져있던 귀로도 똑똑히 알 수 있는 소리로 '정말 좋아해' 라고 전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즐겁게 지냈던 날 밤에, 저는 좋아하던 레코드를 틀고 조용히 잠에 빠지며, 소리에 작별을 고했습니다. 




 이전부터 켈시 선생님에게서 말씀을 들어왔기에 소리를 잃게 될 것은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슬펐을지언정,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괴로웠던 것은, 그 후에 찾아온 실명. 


 아침에 일어나자 세상이 새햐얀 안개로 뒤덮여있었을 때의 충격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적의 습격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아츠를 발동하고 말았습니다. 정신계 공격으로 인한 착란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곧 간호사 분에게 붙잡혀 진정제를 맞고 의식을 잃었고, 그 뒤에 깨어나고 나서야 제 몸에 찾아온 절망적인 사실을 알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병이란 건, 이렇게까지 무자비하게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것일까―― 눈에 붕대를 감긴 채로, 그저 충격에 멍하니 있는 것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아무것도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새하얀 세계에 내던져져, 남은 수명도 이제 반 년 정도라는 진단을 받은 후, 로도스의 규정에 따라 이곳 로도스 터미널로 이송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매일 울었습니다. 울다가, 지금 저는 자신의 우는 소리조차도 듣지 못한다는 것이 느껴져, 그 슬픔에 또다시 울기를 반복했습니다. 


 새하얀 세계에 오로지 나 홀로. 울고, 울다 지쳐 기절해 잠드는 것을 반복. 


 그런 날들이 계속된 뒤에―― 저는 드디어 모든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어차피 저는 감염자. 결코 평범하게 죽을 운명이 아니라는 건, 몸에 오리지늄이 튀어나왔던 그 날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오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발버둥쳐도, 울부짖으며 소리를 질러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우는 것을 멈추고, 남아있는 날을 조용히, 평온하게 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렇게 결의를 다지자, 새하얀 안개로 뒤덮인 세상에서도 더이상 쓸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제 머리 속에는 아직 수많은 추억들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의식을 집중시키면, 로도스의 식물원에 핀 수많은 꽃들이나, 안젤리나 씨와 함께 먹었던, 녹아버릴 듯 맛있었던 염국의 디저트나, 지질 연구를 위해 스탭 분과 함께 돌았던 화산의 웅장함을,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할 수 있습니다. 


 아츠 스태프를 들고 감염자를 보호하기 위해 싸운 것도 지금으로서는 좋은 추억입니다. 적의 공격을 맞았던 아픔, 폭도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느꼈던 두려움도, 진짜 죽음을 눈앞에 둔 지금은 약간의 장난처럼 느껴집니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상태에서 점자를 익히는 것은 정말 힘들었지만 보람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지금은 어려운 책도 술술 읽을 수 있습니다.




 지루하지 않으니까, 절망하는 일도 없습니다. 


 로도스 터미널에 오기 전까지의 제 인생에도 후회는 없습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제게는, 한 가지 행복이 있습니다. 


 눈도 귀도 잃어버린, 그런 저의 불행을 덧씌워버릴 수 있을 정도로, 무척이나 커다란 행복입니다. 


 그 행복이 지금, 제 병실에 와주었습니다. 






 침대 리클라이너를 일으켜 무릎에 펼친 점자책을 읽고 있었던 저는, 피부에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으로 병실의 문이 열린 것을 느낍니다. 


 아무래도 시각과 청각을 잃은 만큼 다른 감각이 조금 예민해진 것 같아요―― 조금 상스러운 짓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의 냄새를, 확실하게 기억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발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저는 향기를 통해 그가 제 침대 바로 옆에 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놀라지 않도록 그가 조심조심 손을 뻗는 것을 감지하고―― 깜짝 놀래켜줄 셈으로, 그를 와락 껴안았습니다. 



"선배, 와주셨군요!" 



 박사. 로도스의 오퍼레이터들 중에서도, 오직 나만이 선배라고 부르는 인물. 


 선배는 저의 갑작스런 포옹에 깜짝 놀라며 몸을 들썩였습니다. 그리고는 제 등에 팔을 둘러, 저를 부드럽게 안아주었습니다. 



"이틀 만이네요, 선배. 재회를 축하하는 포옹이에요. 꼬~~옥......"



 팔과 뺨으로 느껴지는 것은 주름진 백의의 감촉. 힘을 주고 꼬~옥 껴안으면 그 너머로 선배의 온기가 서서히 스며들어옵니다.


 감촉의 변화로 선배가 살짝 움직인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은 조금 어리광쟁이가 되어, 좀 더 강하게 꽉 껴안습니다.



"싫어요, 안 놔줄 거예요. 저, 선배가 너무 그리웠어요. 최소한, 앞으로 10초 정도는 이렇게 있어주시지 않으면 곤란해요." 



 선배는 '뭐가 곤란하다는 거야' 라며 잔소리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듣지 않습니다. 들을 수가 없으니까요. 저는 선배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로, 선배와 만났다는 기쁨에 그만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습니다. 


 선배는 상냥하기 때문에 저의 어리광을 용서해 줍니다. 선배는 나를 억지로 뿌리치지 않고, 대략 30초가 지난 뒤에야 제 어깨를 톡톡 쳤습니다. 



"에헤헤, 곤란하셨을까요?" 



 장난기 가득하게 수줍어하자, 선배는 제 머리를 자상하게 쓰다듬어줍니다. 


 선배의 손. 성인 남성의 커다란 손바닥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지자, 마음에 남아있던 어두운 기분까지 날아가버리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로도스 터미널에 온 이후, 선배는 때때로 저를 만나러 와주었습니다. 


 로도스의 회사 규모도 상당히 커졌기 때문에, 특히 아미야 씨와 선배는 외교 쪽 업무량이 방대해져 최근 1년은 거의 로도스 본함에 없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시각이나 청각을 잃기 전 마지막 순간은 선배와 보내고 싶었지만, 당시는 어떻게 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로도스 본함으로 돌아온 선배는, 제가 로도스 터미널로 이송되었다는 것을 듣자, 일부러 헬기를 타고 나를 만나러 와 주었습니다. 선배에게 한껏 끌어안겼을 때, 저는 기쁨과 상실감이 넘쳐흘러 오랜만에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포옹에서 벗어난 선배는 제 손을 잡았습니다.


 손바닥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천천히 움직여 갑니다.


 눈이 먼 나의 새하얀 안개투성이 세상에, 선배의 손가락이 선을 그립니다. 



――자, 주, 오, 지, 못, 해, 서, 미, 안, 해 


"......사과하지 마세요. 선배가 바쁜 건 저도 아니까요. 그런데도 만나러 와주셔서, 저는 너무 기뻐요."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문자를 쓴다. 그것이 지금 내게 허가된 선배와의 의사소통 수단이었습니다. 


 선배는 다시 저의 손바닥 위로 손가락을 움직입니다. 



――상, 태, 는, 좀, 어, 때, 괜, 찮, 아


"상태는 아주 안정적이에요. 선배가 절 보러 와줬으니까요, 기운이 쑥쑥 솟아나요!" 



 저는 그렇게 말하며 선배를 올려다봅니다. 


 물론 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색을 잃어버린 새하얀 세상에 선배의 얼굴이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저는 선배의 손과 몸의 위치, 기억 속의 그의 키를 필사적으로 떠올리며, 그의 얼굴이 있을 새하얀 허공을 바라봅니다.


 손바닥에 문자가 없더라도, 기억 속의 선배가 '그거 다행이야' 라며 미소지어주는 것이 전해집니다. 저는 선배의 손을 잡아, 저의 뺨에 대고 문지릅니다. 



"아까 선배가 예전에 가져와주신 학술잡지를 읽고 있었어요. 재앙을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풀어내야 할 과제라고 여기는 의식개혁은 이미 상당히 진행되고 있는 것 같네요.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니 마치 제 일인 것처럼 기뻐졌어요. 이것도 선배가 점자 서적을 가져다주신 덕분이에요!" 



 선배의 눈에 저는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요. 새하얗게 물든 시야로는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그의 흰 옷깃을 잡고,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가 하는 것처럼 몸을 비비면서 해맑게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선배, 아미야 씨나 켈시 선생님은 잘 지내세요?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저, 선배나 다른 분들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저는 선배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의 얼굴을 상상함과 함께 위를 올려다보며. 


 가능한 한 눈부신 미소와, 가능한 한 밝은 목소리로. 


 적어도, 나와 보내는 이 시간을 즐겁다고 생각해 줄 수 있도록.


 적어도, 비참해 보이지 않도록.


 당신이 와줘서 행복하다는 걸, 부디 알 수 있도록――





















"에아! 아―에우아s에―구어!" 



 그건 고문과도 같은 역겨운 괴성이었다. 


 로도스 터미널 병실에, 지옥의 망자의 비명소리같은 소리가 울려퍼진다. 


 무엇하나 의미를 이루지도 못하는, 듣는 쪽의 머리가 썩는 듯한 불쾌하기 짝이 없는 소리. 그것이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의 큰 소리로 그치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어해으흐어즈어! 어으어으퍼어!"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은 해괴한 소리의 나열은, 이쪽을 발광시키는 게 목적인 듯한 악마의 주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에이야퍄들라는, 아무것도 모를 뿐이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있는 내가, 괴로움에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상태라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t애! 아아n어허우우! 오어하저어! 이후s히쓰어어허어p어!



 그녀에게 있어 그것은, 가슴 뛰는 즐거운 잡담일 것이다. 


 그녀는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발음도 성량도 망가진 목소리는, 오물을 흘려보내는 하수구마냥 추악한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내 얼굴을 보려는 시도도 실패했고, 몸을 뒤로 젖힌 채 거의 바로 위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해 경련하는 환자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도.


 내게 보여주려고 만든 듯한 미소는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떨리고, 눈을 붕대로 가린 그녀의 그런 모습은 마치 목에 밧줄을 맨 사형수 같다는 것도.


 그 어떤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에이야퍄들라는 믿을 수 없는 힘으로 내 백의를 움켜쥐고, 영문도 모를 더러운 외침을 계속 퍼부을 뿐이었다.



"어언흐애. 아―히헤으히셔애하아아? 이흐으t애어? 으어애n애! 로으브후아아이이s허어어



 이젠 한계다. 더는 견딜 수 없다. 


 나는 에이야퍄들라의 어깨를 붙잡고 강하게 밀쳐냈다. 그녀는 마치 꿈에서 깬 듯, 방 안을 울리던 큰 소리를 딱 멈추었다. 



"......s어은p해애?" 



 나는 정지 버튼을 눌린 듯 굳어있는 그녀의 손바닥을 잡고, 손가락으로 글씨를 써 '못 알아듣겠다' 고 전했다. 


 힉, 그녀의 짧은 숨소리가 울렸다. 저주 인형처럼 미소짓고 있던 얼굴이 순식간에 슬픔으로 물들어 간다. 


 나는 에이야파들라의 어깨에서 손을 떼어, 침대 옆의 PC 앞으로 그녀를 유도했다. 화면에는 텍스트 에디터의 새까만 화면이 비치고 있다. 


 에이야퍄들라는 농인용 키보드를 조심스럽게 두드리며 화면에 문자를 띄웠다. 



『죄송해요, 선배』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녀는 방금 전과는 다른 사람처럼 차분했다. 붕대로 눈이 가려진 얼굴에는 이성과 지성이 돌아온 듯했다. 처음부터 아예 잃어버린 건 아니었지만.



『선배랑,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요. 제 목소리로 들어주시길 바랬어요』 



 에이야퍄들라는 그러고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할 말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그녀는 고개를 푹 떨군 채, 깊게 침울해있었다. 나는 그녀의 작은 등에 손을 얹어, 다정하게 쓰다듬어준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신경 쓰지 마' 라고 적었다. 


 에이야퍄들라는 조금 전까지 잔뜩 신났던 기색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덧없는 미소를 지었다. 키보드를, 오타가 나지 않도록 신중하게 타박타박 두드린다. 



『역시 저는,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괜찮지 않나봐요』 



 나는 대답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동의해야 할지, 아니면 부정해야 할지, 어떤 선택지가 그녀의 마음을 부수지 않을까, 제대로 판별할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옅은 밤색 머리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입을 벌리고는, 내 손을 잡아 얼굴 옆으로 가져가 자신의 뺨을 문질러댄다. 


 부드럽고, 비단처럼 매끄럽고, 아직 앳된 구석이 남아있는 에이야퍄들라의 피부. 그 체온은 체내를 순환하는 고농도의 오리지늄 반응에 의해 매우 높았다.



『몸 상태는, 정말로 좋아요. 통증이나 발작도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어요』 



 전혀 통하지 않았던 커뮤니케이션을 다시 하려는 듯 에이야퍄들라는 키보드를 친다. 그 문자열은 매우 차갑고 건조해서, 그녀가 무리해서라도 직접 대화를 원했던 심경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선배가 만나러 와줬으니까, 힘이 쑥쑥 솟아올라요^^』 



 마지막에 기호로 미소를 지으며, 에이야퍄들라는 내게서 왼쪽으로 10도 빗나간 곳을 향해 피스 사인을 지어보였다. 


 순간,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괴로움이 나를 덮쳤다. 


 어차피 그녀는 듣지도 못할텐데도 욕설을 내뱉지 않은 것은, 내가 아직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치밀어오르는 미안함과 한심함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내가 이를 악문 채 치욕과 무력감에 떨고 있는 것도, 에이야퍄들라는 역시 눈치채지 못한다.



『또, 만나러 와주시겠어요? 선배』



 마지막으로 그렇게 적고, 에이야퍄들라는 키보드에서 손을 뗀다. 


 나는 납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움직여 그녀의 손바닥에 '물론'이라 글자를 적었다. 


 에이야퍄들라의 표정이 화악 밝아지고, 나의 품으로 뛰어들며 끌어안았다. 


 전혀 조절되지 않은 힘으로 나의 몸을 조이고, 가슴팍의 셔츠에 부비부비 얼굴을 문지른다. 마치 내 냄새를 기억하고, 어디까지든 쫓아가겠다고 호소하는 것 같다. 말로 하지 않아도, 그녀의 '약속이에요' 라는 듯한, 저주와도 같은 듯 강한 마음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s어어배애애......" 



 망자의 신음같은 소리로 전해진 것은, 아마도, 녹을 듯한 사랑의 속삭임이었을 「선배」라는 부름. 






 아아, 이 얼마나 애처로운가. 


 그녀는 대체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려는 걸까. 


 그녀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그녀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나는 박사가 아닌데. 







※ 일러스트 출처: https://x.com/a_chxoblc/status/1626142858662268929 



※ 이 소설은 원작자 「オリスケ」님의 허가를 받고 번역하였습니다. 

※ 작가분 트위터: https://twitter.com/brava_novel 

※ 원문출처: https://syosetu.org/novel/332051 



절대 사이코 드라마같은 거 아님 약간 하드할 뿐인 순애소설임 


블아 소설 좋아하는 사람은 알 지도 모르는 히마리의 유서 작가분 작품


원본이 총 11부작인 대형 프로젝트. 헌데 분량이 짧은 화는 하나로 합칠 거라, 올라오는 건 아마 9~10화 정도에 완결날 것임. 

분량이 엄청나게 길어서 처음에는 가져올까 망설였는데, 읽고 나니 대단한 퀄리티라 어떻게든 알리고 싶었다. 


중반부에 19금 파트도 나올 예정 


처음 봤을 때 에이야가 말도 제대로 못하는 파트에서 굉장히 섬뜩했는데 그게 잘 전달됐을지 모르겠네 


오타 오역 의역 어색한 표현 지적 환영 


※ 2화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