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똑- 똑-. 


별빛이 계곡을 이루는 깊디 깊은 밤.

일정한 간격으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남색의 연미복과 실크햇, 연녹색 머릿결이 묶인 소녀가 한 손엔 가방을 쥐고 있었다. 


"앗, 네에~?"

"크리스탈로, 나야. 지금 들어가도 될까?"

"타임키퍼 씨 셨군요! 네, 들어오셔도 되요." 


타임키퍼라고 불린 소녀가 허락을 받자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창 밖을 향한 채, 링거투성이의 팔로 책을 펼치고 있던 타임키퍼와 비슷한 나이처럼 보이는 연약한 소녀가 자신의 의료기기 위에 앉아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 콜록콜록... 죄송해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타임키퍼 씨?"

"요즘 병세가 조금 안좋아졌다고 들어서. 걱정이 되길래 왔어."

"그러시군요... 전 괜찮아요. 걱정 안하셔도 되시- 콜록콜록..." 


크리스탈로는 말을 잇지 못하고 몇번이고 더 기침을 반복했다. 


"죄송해요. 갑작스레 기침이- 콜록... 자꾸 나오네요..."

"아니야. 네 아픔을 어찌 해주지 못하는 내가 더 미안하지." 


병세에 아파하는 소녀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하던 타임키퍼는 무언가 떠오른 듯 몸을 숙여, 들고다니던 가방을 열었다. 


"아, 그리고 너에게 줄 선물이 있어. 잠시만." 


말을 끝낸 타임키퍼가 자신의 가방을 열어 잠시 뒤적거리자 무언가를 꺼내 크리스탈로의 앞으로 내민다. 


"우와! 꽃인가요?" 


화색이 든 크리스탈로는 작은 꽃병에 든 꽃을 받아 창가에 두고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캐모마일 꽃이라고 불리는 꽃이야."

"캐모마일 꽃이라... 꽃말이 분명 '고난을 견딜 역경 속의 힘' 이었죠... 후후..." 


평소 자신의 병으로 인한 고통으로 밤을 지새우는 그녀는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에,

'꽃말에 대한 책 또한 읽었지 않았을까?'

하는 버틴의 예상은 완벽하게 들어맞은 듯 했다.


"저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주시다니... 콜록... 정말 감사해요, 타임키퍼 씨."

"꽃은 드루비스 씨가 피워내주셨어. 나말고 드루비스 씨한테 감사해도 돼."

"아녜요... 콜록콜록, 타임키퍼 씨가 저를 위해 이 꽃을 준비 해주신 거잖아요. 저 정말 기뻐요." 


크리스탈로의 말과 기뻐하는 모습에 타임키퍼는 그나마 안심이 된다는 듯, 살짝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기쁜 모습에 바쁜 와중에도 드루비스 씨에게 부탁해서 꽃을 가져오길 잘했다고 생각헸다.


끼이익-.. 


이상한 소리에 타임키퍼가 뒤를 돌아보자, 문이 살짝 열려있었다.

문이 저절러 움직이며 난 소리인걸까. 


"저어... 타임키퍼 씨." 


크리스탈로의 목소리에 타임키퍼는 다시 고개를 그녀에게 옮긴다. 


"조금만 같이 책 읽어주실래요? 아주 조금만요." 


그녀의 말에 손목의 시계를 확인한 타임키퍼는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좋아. 지금 시간은 여유로워."

"와아, 좋아요! 그러면... 콜록콜록..." 


크리스탈로는 의료 기계를 조종해 침대 옆에 책장으로 다가가 읽고있던 책을 넣고 책장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 책 하나를 찾아 꺼내 타임키퍼의 곁으로 돌아온다. 


"같이- 콜록... 같이 이거 읽어요!" 


'공병문고' 라고 적힌 작은 문고본이었다. 


"공병문고?"

"제 일기에요. 제가 아플때부터 계속 써온 일기요. 같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크리스탈로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이기에, 타임키퍼는 침대에 앉아 그녀의 공병문고를 같이 펼쳤다.

그녀의 공병문고를 보고 얘기하며 때론 안타깝게도, 때론 안심하고 기뻐할 때도 생기며 그녀에 대해 더욱 알 수 있었던 타임키퍼였다.

그렇게 공병문고를 보다 어느덧, 30분이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 지나있었다. 


"오늘 같이 있어주셔서 감사해요. 콜록... 꽃도 정말 감사하고요."

"나야말로, 너에 대해서 더 알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어. 이만 푹 쉬어, 크리스탈로." 


타임키퍼는 침대에서 일어나 크리스탈로와 서로 손인사를 하며 문을 나선다. 


"앗, 타임키퍼 씨!" 


그녀의 다급한 외침에 타임키퍼는 나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양모 러그와 모스트 잠옷 치마를 입은 은발의 소녀에게 시선을 옮겼다. 


"다음 선물도, 기대해도 될까요?" 


그녀의 얕은 미소와 함께 기대 가득한 목소리를 들은 타임키퍼는 이번에도 살며시 웃고 고개를 끄덕이며, 


"응. 다음에도 선물 꼭 들고올게."

"네에! 콜록- 기대하고 있을게요!" 


크리스탈로의 해맑은 웃음과 대비되는 기침 소리와 함께 방을 나섰다.





또각- 또각- 또각- 


발걸음을 옮긴 타임키퍼가 도착한 곳은, 버틴(Vertin) 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는 재단의 숙소. 


마도술로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자신의 가방 속 공간에 있는 집의 거실 정도 크기의 방과 별빛 호수가 생기기 시작하는 하늘이 보이는 창문이 그녀를 반겨준다. 


"후우..." 


요즈음, 버틴에겐 꽤나 바쁜 날들이 계속 지속되고 있었다.

폭풍우와 관련된 일은 고사하고, 최근 불어나는 마도학자들에 대한 일들에 버틴이 직접 개입하는 일이 많아졌다.

물론 이것 또한 타임키퍼인 버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나, 그래도 조금 버거워 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도 결국엔 크리스탈로처럼 아직 어린 소녀임으로. 


스르륵- 


우선 버틴은 모자를 벗어 옷걸이 맨 위에 걸어 놓았다.

그리고 이어서 연미복 윗 복장의 단추를 풀어 셔츠 차림으로 연미복을 걸려고 하는 그 때, 


"...타임키퍼." 


방 안쪽에서 들리는 나지막한 목소리.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흠칫한 버틴.

허나 곧 익숙한 목소리임을 깨닫고 목소리의 주인을 부른다. 


"소네트?" 


버틴의 말과 동시에 방 안에서 갑자기 소네트가 모습을 들어냈다.

방을 들어설 때, 소네트가 보이지 않았던 것은 마도술 때문일까.

그것보다 소네트가 왜 이 오밤중에 자신을 찾아왔는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것도 투명화 마도술까지 쓰며 몰래. 


"무슨 일이야, 소네트?" 


그러나 그녀는 버틴에 말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조금 내려 앞머리가 눈을 가린 채, 가만히 서 있을 뿐. 


"소네트?"

"......" 


그러고 보니 최근 한 달 동안 소네트를 만난 적이 거의 없었다.

버틴이 몰려드는 마도학자의 관리로 인해 한동안 소네트를 만날 일은 재단의 일에 관련된 것들 뿐.

혹여나 그 사이에 소네트에게 말 못할 사정이 생긴건 아닐까?


"...소네트."

"......" 


대답하지 않는 소네트를 보며 무슨 일이 있는게 분명하다고 버틴은 확신했다.

점점 그녀를 향해 다가가자 그녀가 조금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 


이번엔 버틴 또한 침묵하며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작게 떠는 소네트를 응시했다.

흰색 재단 드레스 복장에 볼륨감 있는 오렌지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

자신의 조수 이전에 자신의 친구인 그녀가 이러는 모습은 처음이기에 버틴도 적잖이 당황하게 되었다.

그런 버틴의 눈에 들어온 약간 삐뚤어진 마름모 머리띠. 


"소네트, 잠시만." 


그런 그녀의 삐뚤어진 마름모 머리띠에 손을 뻗어 정돈을 해주려던 찰나.


"우왓-?!" 


소네트의 손이 갑자기 버틴의 오른쪽 손을 붙잡고는- 


"아아..." 


버틴의 손을 자신의 뺨으로 갖다대고 약간 흥분한 듯한 숨소리를 내며 비벼대기 시작했다. 


"소...소네트?"

"타임키퍼의 손... 오랜만이에요. 너무 좋아요..." 


당황한 버틴이 소네트를 불러보지만, 소네트는 애교부리는 고양이처럼 버틴의 손에 자신의 뺨을 부비대는 것에 집중했다. 


"소네트, 갑자기 왜이러는..." 


허나 뭐라할 틈도 없이 소네트는 버틴의 손을 자신의 입쪽으로 끌어당김과 동시에, 


"CHU...."

"...!?" 


버틴의 손바닥에 키스를 하고 곧이어 손을 핥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키스와 핥기에 버틴은 살짝 움찔하였으나, 소네트는 계속 자신의 혀로 버틴의 손을 핥고만 있었다 


"츄흡...핥...핥하앑....츏....츄하..." 


버틴은 소네트가 자신의 손을 계속 핥는 모습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소네트가 이러는 이유조차 알지 못하기에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러다 소네트가 손을 핥는 부분을 손바닥에서 손가락 마디 사이로 옮겨졌을 때, 


"츄우...츄하....핥..." 


잠시 들린 그녀의 고개에서 버틴은 보았다.

자신을 계속 응시하는 그녀의 눈에서 내리는 눈물을. 


그 모습에 버틴은 가만히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애원하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자신이 이렇게나 필사적으로 애원하는 걸 봐달라고, 알아달라고. 

욕망이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츄햐...." 


소네트가 버틴의 손을 핥는 것을 멈추고 혀를 떼자, 소네트의 침이 길게 늘어뜨려졌다.

버틴의 오른쪽 손은 이곳저곳 전부 소네트의 침으로 영역표시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소네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탸임...키퍼어......아니..." 


두근- 두근- 


숨을 헐떡이는 에로틱한 소네트의 모습에 버틴의 심장이 고동친다.

이상한 마음이, 감정이 부풀기 시작했다.

어찌할 줄 몰라하며 요동치는 마음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어느새 버틴 또한 이 분위기에 취한 것 일까? 조금씩 호흡이 불안정해졌다. 


"버틴..." 


정신 차리지 못하는 버틴에게 곧이어 소네트가 살짝 울먹이며 내뱉은 말은 


"헛된 소원인 걸 알아요... 하지만 지금 만큼은 오직 저에게만, 당신의 시선을 저에게 집중해주세요..." 


버틴의 머릿속을 더욱 헤집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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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평가-피드백 언제든지 환영.

계속 배우는 중이니 별로여도 양해 바람.

maybe? 2화까지는 나올 것 같은데 19가 될지 흑화가 될지는 써보면서 결정할듯?










번외인 이야기긴 한데 소네트를 기린으로 이입하니까 뭔가 쓰다가 좆같아 졌음.

이거때문에 집중 안되서 ㅈ될 뻔함.

암튼 다음 작품으로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