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1.3 기반 창작물이며 어떠한 미래시 스포도 담고 있지 않음을 알립니다)

(다만 1~4챕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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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아 씨와 겨울 씨를 잃었다.


여느 때와 같이 재건을 상대하고 조사하기 위해 출장을 나갔던 중 발생한 사고였다.



아니, 사고가 아니었다.


나는 상대의 전력을 얕잡아보고 동료들이 든 나의 여행 가방을 두고 갔으며, 이는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를 필연적인 사건으로 만든, 나의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처음엔 출장을 내키지 않아했던 두 사람의 모습과는 반대로, 그들은 그들의 자리를 끝까지 지켰으며, 나만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는 또다시, 나의 사람들을 잃었다.


나의 손으로, 그렇게 했다.






나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도 전부터 재단의 끊임없는 추궁을 받아야만 했다.


'폭풍우 특별법'이 통과된지도 얼마 안 됐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 '사고'가 나의 실수임이 알려지자 재단 내에서의 나의 위신은 꽤나 떨어진 듯 했다. 재단의 의회에서는 쉬지 않고 토론이 오갔으며, 아마 난 재판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Z 씨도 이번만큼은 자신도 나를 감싸주기 힘들 거라 답했고, 소네트는 나름 최선을 다해 나를 변호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타임키퍼'라는 직위와 나의 특별한 '신체'는 대체 불가능한 것이기에, 적당한 근신 처분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 끔찍한 가상 몽유 기계만 아니라면, 아무래도 좋았다.




"하..."




오랜만에 돌아온 나의 가방 속, 나의 방.


오는 길에 네크롤로지스트 씨가 말해주길, 그들의 장례는 재단에서 잘 치뤄젔다고 하며 그들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빌어 주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책감이 몰려와 나머지 말을 제대로 듣는 척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나를 이해해주리라.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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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트는 어느 날 새벽, 자신의 방을 나오며 버틴의 방에 불이 켜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늦은 새벽인데도, 불은 선명하게 문 사이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충성스러운 강아지는 그런 주인을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버틴이 이제껏 그렇게 동요한 적은 잘 본적이 없다.


부쩍 말수가 줄고, 눈 밑은 어두워지고, 생기를 잃는 것이 마치 시들어가는 수레국화와 같은 모습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소네트는 메스머 주니어와의 대화를 곱씹으며 조심스레 버틴의 방 앞으로 다가갔다.




"똑똑똑..."


"타임키퍼, 잠깐 나와주실 수 있나요?"




잠깐이라고 하기엔 조금 긴 정적이 흐른 후, 방문은 삐그덕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그러나 소네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헝클어진 머리, 지워지지 않은 눈물 자국, 갈라진 목소리...


모두 버틴에게선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타.. 타임키퍼!"


"소네트.. 갑자기 무슨 일이야..?"


"타임키퍼께서 며칠이나 오래 깨어있으신 걸 보고 걱정이 돼서 찾아와봤는데.. 정말로..."


"소네트, 난 정말 괜찮아."


"..."


"그냥 좀 잠이 안 와서 깨어있었을 뿐이야. 걱정하지 마."


소네트는 무슨 말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내 방문은 돌문처럼 느리고도 굳게 닫혀버렸다.







어느 날 오후가 다 되어서야 방을 나선 버틴은, 문 앞의 소네트를 마주했다.


요즘 버틴이 끼니까지 거르며 늦게 잠에서 깬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드루비스 씨와 투스 페어리 씨도 어찌할 수 없었다.




"타임키퍼, Z 씨께서 조사 임무를 주셨어요."


"..?"


최근 들어 업무를 거의 하지 않았던 버틴은, 자신에게 임무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여겼다.


"어려운 임무는 아니에요. 재단 근처의 마도학 상점들을 점검하는 건데, 오랜만에 바깥이라도 나가셔서..."


"알았어, 소네트."



눈치가 빠른 버틴은 이를 모를 리 없었다. Z 씨와 소네트가 나를 위해 준비한 거겠지.


하지만 지금은 재단의 명령을 거절할 수 없는 위치인 데다가, 소네트의 표정을 봐서도 그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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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일이 있고도, 마지못해 나선 바깥은 예전과 그대로였다.


나의 상황과는 상반되는 평화롭고도 청명한 하늘과 맑은 공기가, 마치 나를 조롱하는 듯했다.


나와 소네트가 조사할 상점의 목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정도는 보조 조사원들의 정기 점검이기에, 밤이 될 쯤에는 전부 끝낼 수 있었다.




"소네트, 이제 전부 끝난 거지? 그럼 Z 씨께 말씀드려서 일찍.."


"아, 아니에요 타임키퍼! Z 씨가 1박 2일의 일정으로 잡아주신 데는 이유가 있을 거에요... 그리고 숙소까지 알아봐 주셨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버틴은 또다시 마지못해 소네트를 따라갔다. 이 모든 것이, 모든 악몽이 얼른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Z씨가 알아본 여관은 공교롭게도 사람이 몰려 방이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 근처에 다른 여관은 없었기에, 소네트는 어쩔 수 없이 열쇠를 받아들었다. 방에 들어서자, 2개의 큰 침대가 나란히 놓여져 있었다.




"이렇게 같이 자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렇죠, 타임키퍼?"


"그러네..."


기운이 빠질 때로 빠진 버틴은 침대에 풀썩 누워버렸다. 어느새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다.




그치만, 버틴은 잠에 들 수 없었다.


불면증 때문도 있지만, 먼저 잠든 소네트에게 방해가 될 수 없었기도 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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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왔다.


이전에 느끼지 못해봤던, 아주 포근한 바람이었다.


넓은 잔디밭 너머에서 희미하게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고리..?"



먼 옛날에 잃어버린, 내 손으로 없애버린 나의 친구.


그녀는 그럴 리 없다 생각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고리! 너 여기 있었구나!"



그러나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아니, '그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이사벨라? 슈나이더? 모두들.. 왜 여기 모여 있는거야..?"



그러자 잔디밭은 무수한 가시밭으로 변하고, 버틴은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사람들의 눈은 검은색 칠이 덮여버렸으며, 무수한 손길이 그녀를 아래로, 아래로 잡아당겼다.






'네가 우리를 죽였어...'


'왜 날 구해주지 않은거야?'


'날 떠나지 마.'


'왜 우리의 시대를 구해주지 못한 거야?'


'또 너만 살아남은거야...'



아니야...



아니야..





난.. 나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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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트는 문득 이상한 소리에 잠을 깼다.


그러자 그녀의 옆에서 고통의 신음소리와 알 수 없는 말을 연신 내고 있는 버틴이 보였다.


소네트는 깜짝 놀라 버틴의 옆에 앉아 살피니, 그녀는 놀랍게도 잠든 상태였다.


그순간,






"허억..!"




끝없는 악몽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현실은, 더 나을 것도 없었다.


수많은 눈물 그 옆으로 소네트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녀는 마치 꿈이길 바라는 듯, 소네트를 힘껏 껴안고 울기 시작했다.







"흑.. 흐윽... 소네트..."



소네트는 깜짝 놀라 얼굴이 붉어졌지만, 이내 그럴 만한 분위기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네트... 흑... 전부 나 때문이야.... 흐윽.. 흑, 친구들도, 슈나이더도... 으으윽... 겨울 씨와 파비아 씨도......."


"..."



소네트는 버틴을 꼭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버틴이 그토록 서럽게 우는 모습은 그 누구도 본 적이 없었으리라. 그녀의 옷이 눈물로 흠뻑 젖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나도.. 흐흐흑... 나도 평범한 가족과... 친구들을 가지고 싶었어..."






"소네트... 흑.. 너만은... 흐윽.. 너만은 날 떠나지... 않을 거지..?"





그녀가 짊어져야 했을 책임과 사명은, 불행은, 분명 연약한 16살 소녀의 것은 아니었으리라.





소네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타임키퍼.. 타임키퍼께서 잘못한 것은 없어요."




"타임키퍼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정의를 위해 힘쓰셨어요. 스스로 자책하실 필요 없어요."




"우리의 친구들도 타임키퍼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길 바랄 거에요."




"타임키퍼... 그러니 너무 혼자서 힘들어하실 필요 없어요.. 당신 곁엔 항상 저와 동료들이 있어요. 언제나 당신의 힘이 되어드릴게요"






한 번도 남에게 힘든 내색을 한 적 없었던 버틴은, 진심어린 위로를 받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모든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없을지라도, 지금의 그녀에겐 그것이 그 어떤 약재보다 좋았다.


마치 어머니의 품과 같은 따뜻함 속에서, 버틴은 다시금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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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랜만에 오랫동안 잠든 버틴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면서도 지난 날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기억이 되돌아오는 순간 뒤를 돌아보니, 이미 채비를 마친 소네트가 버틴을 반겼다.



"깨어나셨네요, 타임키퍼. 잠은 잘 주무셨나요?"



버틴은 잠시 멈칫 하더니, 이내 눈물 자국을 재빨리 닦고 소네트 앞에 엉거주춤 서서 말을 꺼냈다. 마치 혼나기만을 기다리는 어린 학생 같았다.



"미안해 소네트... 어제는..."



그순간, 소네트는 말 없이 버틴을 안아주었다.


버틴은 흠칫 놀라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어제의 일을 생각하자니 소네트에게 순순히 안겨줄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버틴."



우두커니 선 버틴은 소네트의 눈을 제대로 마주칠 수 없었고, 소네트는 이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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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하루가 지나고 다시 맞이한 바깥 세상. 평화롭고도 청명한 하늘과 맑은 공기가 나를 반겨 주었다.


나는 소네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 소네트.. 이제까지 딱딱하게 군 거 미안해.."


"네? 전혀 아니에요 타임키퍼! 타임키퍼는 엄연히 저의 상관이시니.."


"넌 나의 친구였잖아, 소네트."




"이, 이제부터는 날.. 버틴이라고 불러도 돼.."



버틴이 부끄러운듯 얼굴을 약간 붉히며 말했다. 그러자 의외의 대답에 약간 놀란 듯한 소네트였다.


그러나 그것이 싫지 않은듯, 이내 긍정의 미소를 보여주었다.






"Z 씨가 더 이상 조사할 상점은 없다고 하시네."





"그럼 소네트.. 들어가기 전에, 관람차라도 타러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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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처음 써보는데 읽을만했으면 좋겠다..


피폐해진 버틴과 대정실 소네트 맛있거든요


아무도 안쓸거같아서 내가씀



그래서 이제 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