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뜌땨… 뜌우땨이… 뜌땨땨… 우땨야!"


4개의 다리가 달린 흰색 댕댕이. 동그랗고 토실한 몸매.


"우우… 뜌땨이."


고인 물에 반사된 나를 보니 넷상에서 댕라라고 불렸던 녀석과 똑 닮았다.


설마… 내가 댕라로 변한 것인가?


차이라면 뜌땨라고 하는 이상한 말투다.


그리고 내게 뜌땨는 매우 익숙했다. 평소에 자주 쓰는 말투니까.


"땨땨."


당연하지만, 밖에서 쓰는 건 아니고 인터넷에서만. 뜌땨가 넷상에서 탄생한 밈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왜 댕라의 모습을 한 뜌땨이로 변한 거지?


"뜌땨이!"


아 참! 한가지 짚이는 게 있다면 평소처럼 뜌땨이를 도배하던 어젯밤의 일이다. 


뜌땨이가 뭐냐고 묻는 숲속 친구들에게 친절히 뜌땨라고 외쳤을 뿐인데. 자고 일어나니 이렇게 변했다.


뜌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으며 화를 내는 이상한 친구들. 그들의 원한이 내게 영향을 끼친 걸까.


인간으로 돌아간다면 그땐 제대로 뜌땨이를 알려주지 뭐.


그럼 이제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 볼까.


"뜌땨이?"


그런데 어떻게 돌아가야 하지.



***



"뜌땨땨땨."


뜌땨이로 변한 현실에 절망하는 건 뒤로 미루고, 일단 내 목표를 두 가지로 정했다.


첫 번째는 식량과 안전하게 수면할 장소를 확보하기, 두 번째는 뜌땨이에서 다시 인간의 몸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


둘째는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내가 이룰 목표는 자연스레 첫 번째로 결정.


"뜌뜌. 뜌땨이."


목표를 정한 내가 가장 먼저 출입할 곳은 바로 공중화장실이다. 이유는 식수.


지금의 나는 돈이 한 푼도 없는 거지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물은 찝찝하긴 해도 공짜로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이다.


그럼 가지 않을 이유가 없지. 나는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갔다.


"화장실 전세 냈냐? 빨리 나와라."

"금방 가니까 지랄 좀 그만."

"뜌."


화장실 근처로 다가가니 누군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에게 다가가 도움을 요청하려던 나는 움직이려다 말고 멈칫했다.


"뜌땨이…."


그러고 보니 난 지금 인간의 몸이 아니다. 성인 남성의 발길질 한 번이면 확실하게 날아갈 자신이 있는 허약한 신체다.


만약 저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 날 괴롭힌다면 어떨까? 운이 나쁘면 내 뜌땨이 인생도 거기서 끝이다.


목숨이 위험에 빠지기 직전까진 인간은 피하는 게 좋을 듯 하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움직이자. 저들이 떠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뜌으윽."


남자가 떠나고 조용해진 화장실로 허겁지겁 달려가 물을 틀었다.


-쏴아아.


"뜌땨아!"


크으으. 물맛 미쳤다. 분명 수돗물인데 맛은 삼다수, 에비앙 부럽지 않은 생명수다.


이거 마시겠다고 뜌땨이의 몸으로 한 시간을 걸었으니 당연한 결과려나. 아무튼 식수는 이렇게 해결.


이제 식량과 잘 곳을 찾자.


"뜌우우."


피크닉을 즐기던 사람들이 남긴 잔반들이 보인다. 저곳으로 다가가기엔 보는 눈이 너무 많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는 건 위생이 문제다. 식중독에 걸릴 바엔 물만 마시는 게 낫다.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울리며 동시에 어둑해지는 거리. 허기진 채 사람의 눈을 피해 계속 걸으니 머리가 어지럽다.


"애옹."

"귀여워라~ 많이 먹으렴."


저 멀리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캣맘이 보인다.


고양이 밥이라면 뜌땨이도 충분히 소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뜌땨이!"


인간으로서 뭔가 해선 안 될 짓이긴 하지만… 인간성이 대수냐. 배고파 죽겠는데 저거라도 먹어야겠다. 


굶주린 나, 뜌땨이는 고양이 급식소로 달려갔다.


지금은 사람 밥 고양이 밥 가릴 처지가 아니지.


하지만 나의 낙관적인 예상과 달리 이곳도 마냥 쉬운 곳은 아니었다.


"햐아악!"


인간의 몸이었다면 배를 발랑 까뒤집고 헤실거렸을 고양이들. 그러나 뜌땨이의 몸으론 아무래도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이었으니.


"애오오옹!"

"뜌끼야아아악!"

"냥!"


저 녀석들과 비슷한 체급에 아무런 전투력이 없는 나는 냥냥펀치를 맞고 눈물이 났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어 결국 걸음을 돌렸다.


도망치는 나를 향해 녀석들은 냥이라고 승리를 자축했다. 다음번엔 반드시 복수해주마.


"뜌우우."


배는 고프고 잘 곳도 없는 처량한 내 모습. 얼마나 걸었을까.


생각에 잠긴 채로 정처 없이 떠돌다 사람을 마주쳤다. 커다란 막대사탕을 든 여자아이와 에코백을 든 어머니로 추정되는 인물이었다.


"엄마! 저기 신기하게 생긴 동물이 있어요!"

"어라… 저게 뭘까? 정말 귀엽게 생겼네."


모녀의 반응을 보아하니 나처럼 뜌땨이가 된 인간은 희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 내가 유일한 뜌땨이 일지도 모른다.


긍정적인 것은, 저들이 나를 귀엽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뜌땨이."

"울음소리가 특이해요."


모녀가 나를 신기하게 보건 귀엽게 보건 내 시선은 막대사탕을 향했다.


입에 넣으면 배고픔도 가시고 달콤하겠지… 저 사탕을 빼앗을 방법이 없을까.


소녀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목숨이 달린 문제다.


"착하다아. 이거 먹을래?"

"뜌땨?"

"먹이는 함부로 주는 게 아니야. 자, 어서 집으로 가자."

"네에."

"뜌땨아아아아!!!"


뜌땨이는 먹이를 함부로 먹어요. 제발 저한테 던져주세요.


내 마음속 외침은 모녀에겐 들리지 않았고, 소녀는 결국 사탕을 핥으며 유유히 사라졌다.


"뜌땨이…."


배가 고프다. 다시 물이나 마시러 가야겠다.



***



"구구. 구우욱. 꾸우."

"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공터. 살이 꽉 찬 비둘기가 땅을 쪼며 돌아다닌다.


"뜌땨."


배고픈 나, 뜌땨이는 군침을 흘리며 비둘기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뜌땨이급으로 지능이 낮은 비둘기. 녀석들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긴커녕 걸어 다닌다.


기생충이나 중금속이 있다는 얘기가 있던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놈을 사냥해서 배를 채우고 싶다는 욕망을 이룰 뿐.


"뜌땨이!"

"구구?!"


뒷발을 차며 최대한 빠르게 질주했다. 놈은 내가 코앞까지 도달해서야 놀란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좋아. 모든 게 계획대로다. 이제 녀석의 목덜미를 이빨로 물어 숨통을 끊으면 되는데….


"구구구!"

"뜌땨악!"


목덜미를 문 순간, 비둘기 깃털이 이리저리 휘날리며 격한 저항에 부딪혔다.


놈이 시전한 기술은 비둘기의 오의라 불리는 쪼기. 


날카로운 부리가 정수리에 닿자 일개 뜌땨이에 불과한 나는 아픔에 비명을 질렀다.


어디 내가 죽나 너가 죽나 끝까지 가보자고.


"뜌땨아아아!!!"

"구구구우!!!"

"뜌땨이!"

"꾸우욱!!! 꾸우…."


뜌땨이의 정수리에서 피가 나고 놈의 저항이 약해지던 순간, 놈의 눈에서 생기가 사라지며 푹 쓰러졌다.


그렇다. 비둘기를 상대로 위대한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 어떤 장애물도 분노한 뜌땨이를 막을 수 없다!


"뜌땨이."


지난번 고양이에게 당한 상처를 괜스레 만지곤 깃털을 물어뜯었다. 


생으로 먹는 비둘기고기는 무슨 맛이 날지 궁금하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뜌웨엑."


우웩. 뜌땨이로 제2의 인생을 살면서 경험한 가장 끔찍한 맛이다.


차라리 훈련소에서 먹던 밥이 더 맛있게 느껴질 정도다. 음… 그건 아닌가?


그렇다고 남기면 당장 굶게 생겼으니, 다른 선택지는 없다.


"우땨야…."


그냥 라면이나 먹고 싶다.



***



"뜌땨이!"


뜌땨이의 몸으로 생존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일주일. 


일주일간의 경험으로 나는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꾸우욱!"


방금 들린 비둘기의 울음소리는 돌에 깔린 녀석이 낸 소리다.


재수 없는 비둘기 녀석. 드디어 내 함정에 걸리고 말았구나.


무거운 돌에 나뭇가지를 끼워두고 밑에 과자 부스러기를 깔아둔 조악한 함정이다.


메이드 인 뜌땨이 함정은 잘 작동해 놈을 깔아뭉갰다.


"뜌땨하!"


나는 평범한 뜌땨이가 아닌 인텔리 한 뜌땨이니까. 이 정돈 해야지.


다만 뜌땨이의 동글한 발로 정교한 함정은 아무래도 어렵더라. 저것도 발을 몇 번 희생하며 겨우겨우 만들었다.


식사를 마친 나는 다음 루틴으로 넘어갔다.


바로 고양이를 다시 마주쳤을 때를 위한 전투기술 연마하기!


"뜌땨땨!"


네발로 지면을 박차며 공중으로 떠오른다. 이후 무게중심을 움직여 공중에서 1회 회전.


"뜌!"


하강 도중엔 회전력을 그대로 살려 앞발로 지면을 강타한다.


기술 이름은 필살의 공중회전 킥이라 지었다.


어딜 봐도 공중제비 같다고 말한다면 그렇지 않다. 인텔리 해진 뜌땨이는 바보가 아니다.


"우우… 뜌땨이."


게다가 여가 활동도 있다. 낙엽으로 쿠션감을 구현한 보금자리에서 뒹굴뒹굴하기.


침대에서 뒹굴 하는 거나 낙엽 위에서 뒹굴 하는 거나 거기서 거기다. 아니라고? 뜌땨이가 되면 안다.


그렇게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중, 저 멀리 사람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뜌우땨?"


곧바로 나무 뒤에 숨어 전투준비태세에 돌입하곤 몰래 지켜봤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 사람의 머리가 먼저 보인다. 어라, 예상과 다르게 여자로군. 이 공터엔 무슨 볼일이지.


최대한 조심스레 다가가 확인하니 굉장히 낯익은 얼굴이다. 내 기억이 맞았다면 지금은 취준생일 텐데.


"날씨는 참 좋네."


가볍게 인사만 하던 사이였던 대학 후배 한희진. 그녀가 대낮에 공터에서 병나발을 불고 있었다.


쟨 여기서 왜 이러는 거야. 괜히 이상한 짓을 하는 건 아니겠지.


"거기 누구 있어?"

"뜌…!"


이런! 뒤로 물러나려다 바닥의 나뭇가지를 밟아버렸다. 당황한 내가 고개를 들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선배애애애~"

"뜌끼야아아악!!!"


뜌땨이는 그녀의 안아줘요를 이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