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소설이 아니라 <지박소년 하나코 군>이라는 만화를 읽었습니다. 동글동글한 그림체와 어디서 들어본 듯한 제목이 관심을 끌더군요. 친구에게 물어보니 예전에 방영한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도 적잖이 인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심리적으로 우울한 요즘, 만화의 장면을 감상하면서 인물들이 겪는 문제를 같이 고민해보는 건 꽤나 위안이 되었습니다. "창작문학 채널"이지만 독후감의 형식을 빌려서 만화를 소개해보려고 해요.


<지박소년 하나코 군>은 괴이와 인연을 맺은 소녀, 야시로 네네와 "화장실의 하나코 씨"라는 학원 내 질서유지의 임무를 맡은 유령 소년, 하나코 군과 각자의 사정으로 괴이와 엮이게 된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피안과 차안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등장하는데, 쉽게 말해서 저승과 이승입니다. 그 둘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단절이 존재하지만, 작중 인물들은 특별한 계기를 통해 두 세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경계"를 넘나들며 죽은 자와 산 자가 서로 인연을 맺습니다. 여주인공인 네네는 하나코와 친구가 되고, 여러 상황을 겪으며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지만, 두 사람을 갈라놓고 있는 것은 피안과 차안, 죽은 자와 산 자가 사는 세계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현실입니다. 하나코를 비롯한 괴이들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생전에 이루지 못한 일을 앞으로도 이룰 수 없고, 그들이 인연을 맺은 학생들과 함께 어른이 될 수 없다는 현실에 처해있습니다. 따라서 네네와 하나코의 관계는 언제라도 깨질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정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주변 인물들의 사정도 대체로 비슷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작중 내내 이어지는 분위기이자, 여러 주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화 자체는 온갖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제는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마주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누구나 죽습니다. 그렇기에 모든 일에는 끝이 있죠. 삶 자체가 그러할진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경험들이 비영구적인 건 당연한 것입니다. 피고 지는 꽃, 또 한 살 나이를 먹는 소년, 연인과의 헤어짐, 등등... 이 모든 것이 말입니다. 그러면 그때까지 있었던 일들은 그저 인생의 단편으로, 한때의 기억으로 남습니다. 이런 것을 언제나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람은 앞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은연 중에 지금 같은 상황이 영원히 (또는 아주 오래) 계속될 것이라고 가정하고 살아가니까요. 문제가 되는 것은 끝을 인지한 순간입니다.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 때, 그것에 대해 어떠한 마음을 가질 것인가. 이때는 누구나 야시로 네네, 하나코 군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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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람은 매 순간 죽는 걸까요. 사실은 지는 꽃에 대한 아쉬움,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은 죽음에 대한 감정과 동치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20권이 나온 시점에서는 모두가 피안과 차안의 대립을 의식하고 있고, (쉽게 예상할 수 있지만) 소중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생을 포기하고 피안에 남는다거나, 괴이가 된다거나 하는 극단적인 방법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인 하나코는 조금 다른 입장입니다. 그는 미래가 없다는 것의 씁쓸함을 잘 알고 있어서, 학생들이 남은 인생을 씩씩하게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거기에 자신은 함께할 수 없다 해도요. 물론 나름대로 서로의 만남에 의미를 남기기 위해서, 무언가를 해주기 위해서 절실한 건 그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누군가와 있었던 일이 한때에 불과하게 된다면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이 대상이 되는 그것의 소중함을 더욱 자각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작중 내내 이어지는,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관계는 독자의 마음 한 켠을 불안하게 하면서도 네네와 하나코,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행복한 순간들을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과연 이별이 다가오고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주인공들이 그것을 어떻게 대할 지, 그리고 어른이 되어갈 지가 기대되는 부분입니다.